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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제로성장으로 가는 중력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7 17:23

수정 2018.12.17 17:23

[fn논단] 제로성장으로 가는 중력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본다. 주인공이 산전수전을 다 겪고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한다. 어느 호수에 빠진 우주선에서 나와 간신히 헤엄을 쳐서 땅을 밟으려 하는 순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

한국 경제도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다. 지금의 경제 환경이라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 후반, 내년에는 2%대 중반이 가장 유력하다. 즉 2017년 3% 남짓한 성장률에서 단 2년 만에 0.5%포인트를 날려버리게 된다.
한국 경제를 끌어당기는 강한 중력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문제는 이런 추세라면 이르면 5년 후에, 늦어도 10년 후에는 0%대의 성장률을 경험할 것이고 우리 다음 세대는 '제로성장' 시대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제로성장 시대의 가장 큰 폐해는 기회와 희망의 상실이다. 기업은 기회가 없는 땅을 탈출한다. 투자도 고용도 없다. 정부가 무엇을 하든지 아무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시회빈곤층이 빠르게 늘면서 정부의 재정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지만 국민들의 삶이 너무 어려워 세금을 거둘 엄두도 못 낸다. 청년들이 무엇을 하려 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치워지고, 사회는 병들어 간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그것이다. 그래도 일본은 막대한 국부(國富)와 기축통화국 지위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제로성장 시대에 들어간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곤궁함이 우리의 삶을 짓누를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 강국인 일본도 제로성장의 중력을 탈출하는 데 무려 30년 세월이 걸렸다는 점이다. 우리가 제로성장에 한 번 빠지면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미 분위기상 제로성장 시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중력을 거슬러 이겨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성장률 3%도 괜찮다, 이제는 2%도 괜찮다고 한다. 앞으로는 1%도 괜찮을 것이고, 제로성장도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이비들은 그 중력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편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워 있으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지금 가계도, 기업도, 정부조차도 눕고 싶어한다. 이미 한국 경제는 기회와 희망이 상실된 제로성장 시대에 누워 있다.

영화 그래비티의 엔딩에서 주인공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상황에 헛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다시 사지의 힘을 모아 몸을 일으켜 호숫가를 걸어서 나간다. 우리에게도 아직 몸을 일으켜 걸어서 나갈 기회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네 탓, 내 탓 하느라 있는 힘마저 빼지 말고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고매한 철학과 목표를 가진 길이라 할지라도 일부가 아닌 대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이미 사지(死地)로 가는 길이고, 그래서 그것으로 이미 갈 수 없는 길이다. 미사여구로 포장돼 일부 사람들을 현혹하고 뜬구름 잡는 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 길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한국 사회 대다수가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만 되면 힘을 모아 일어나 걸어 나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로성장으로 끌려가는 중력, 그 공포스러운 힘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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