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제발 가격은 시장서 정하게 두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7 17:23

수정 2018.12.17 17:23

관련종목▶

선진국 가격규제 비교하니..한국, 스웨덴보다 8배 높아
세금 많이 내는 기업이 최고
[곽인찬 칼럼] 제발 가격은 시장서 정하게 두라

올여름 휴가 때 설악산 근처 콘도에 묵었다. 웅장한 울산바위가 잘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 울산바위가 보이는 방과 안 보이는 방이 숙박비가 다르다. 고심 끝에 울산바위가 안 보이는 방을 골랐다. 그만큼 싸기 때문이다. 전망보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했다.
합리적인 선택이라 딱히 불만은 없다.

만약 정부가 콘도 방값을 균일가로 통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모든 사람이 울산바위가 보이는 방을 원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이가 전망 좋은 방을 차지할 순 없다. 같은 값을 치르더라도 누군가는 후진 방에서 자야 한다. 자연 불만이 생긴다.

자본주의 경제에선 가격을 시장에 맡기는 게 상책이다. 그레고리 맨큐 교수(하버드대)는 시장에서 자율로 이뤄지는 가격기구(Price Mechanism)를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라는 교향악단을 지휘할 때 쓰는 지휘봉"이라고 말한다('맨큐의 경제학'). 경제학자가 아니면서도 이 원리를 진작에 터득한 이가 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4년 노 전 대통령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문재인정부가 참여정부를 닮았다고 하지만 가격정책만 놓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문재인정부의 시장가격 개입은 상습적이다. 지난주말에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는 카카오 카풀 대책회의를 가졌다. 여기서 택시 완전월급제 이야기가 나왔다. 기사들이 월 250만원 이상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택시회사는 다 사기업이다. 기사들이 공무원도 아닌데 어떻게 당정 맘대로 월급을 정하나.

서울시도 꾸준히 시장을 넘본다. 여의도 회사 근처 구둣방마다 '제로페이' 광고판이 붙었다. QR코드를 쓱 대면 신용카드 수수료 없이 결제가 이뤄진다고 선전한다. 제로페이는 20일부터 시범실시에 들어간다. 구둣방 주인에게 물었다. "제로페이 쓰겠다는 손님이 있어요?" "에이, 없어요." "그럼 저 광고판은 왜 붙여놓으셨어요?" "그냥 광고판이에요." 카카오페이와 비씨카드는 제로페이 불참을 선언했다. 제로페이는 출발부터 삐걱댄다.

집권당 안에도 인위적인 가격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최운열 의원은 서강대 교수(경영학) 출신이다. 그는 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 수수료를 강제로 내리는 것에 반대한다. 차라리 카드사가 이익을 내면 그만큼 법인세를 더 걷어서 세금으로 영세업자를 지원하면 된다고 말한다. 바로 스웨덴이 이런 식으로 경제를 키우고 복지를 살찌운다. 장하준 교수(케임브리지대)는 한국이 참고할 모델로 스웨덴을 든다. 기업은 투자 많이 하고 일자리 많이 만들고 세금 많이 내는 게 장땡이다. 대신 정부는 넉넉한 세금으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짠다.

보통 복지와 성장은 대립하는 걸로 보지만 스웨덴에선 선순환 관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를 '스웨덴 패러독스'라 부른다('스웨덴 패러독스의 성공 배경과 시사점'·2015년). 스웨덴의 가격규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최강 규제를 6점으로 볼 때 스웨덴의 가격규제는 0.38, 한국은 3.09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몇 년 전 통계이니, 문재인정부에선 수치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
맨큐 교수도 "경우에 따라 정부가 시장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경우에 따라'서다.
최저임금 정책에서 보듯 문재인정부의 과격한 가격 간섭은 되레 더 큰 부작용을 부른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