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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한국판 어벤저스' 꿈은 이루어질까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20 17:03

수정 2018.12.20 17:03

[여의나루] '한국판 어벤저스' 꿈은 이루어질까

우리나라만큼 세계 1등 하는 걸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까. 재능을 가진 싹이 보이면 한눈팔지 못하게 하고 한 우물을 깊이 파게 한다. 그래서 그 싹들이 자라서 이룬 업적들에 우리는 찬사를 보내며 우리 일처럼 열광해 왔다. 박세리, 박찬호, 김연아, 손흥민 등이 그 좋은 예이리라. 경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강의한 개도국 공무원들의 뇌리에 새겨진 한국의 이미지는 이제 자동차와 휴대폰이다. 여기에 종사해 온 기업들은 같은 분야에서 참으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실력을 키워 왔고,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이렇게 한 우물만 판 기업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산업들은 대부분 각자가 가보지 않은 분야,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혹은 서비스 분야, 또는 이들 둘 모두와 결합해서 개척해야 할 이른바 융합산업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융합을 하려면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방식과는 대단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한다. 이른바 이질적인 이종 간 결합을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과학기술, 산업기술 발전의 역사를 되돌아보더라도 끊임없는 이종 간 결합이 새로운 기술진보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산업들을 만들어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종 간 결합', 이것은 우리 경제와 우리 산업이 당면한 새로운 화두인 셈이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최근 필자가 참여한 몇 가지 행사들도 이런 이종 간 결합이라는 화두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난달 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초대해 연사로 참여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기업 모임'에서 참으로 반가운 가능성을 만났다. 우리나라는 기업은 기업, 교육기관은 교육기관 이렇게 따로 자기 길만 가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고 이정동 교수가 '축적의 시간'에서 밝혀준 바와 같이 기업과 대학의 산학협력 연구는 우리나라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기술의 낮은 수준, 즉 기능공을 키우는 일부터 학교와 직장을 이어주는 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참여하는 학생과 기업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움직임이 기술 수준이 더 높은 분야와 기관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다.

반대로 지난 13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주관한 기술규제 세미나에서는 예의 우리나라 방식인 '한 우물 파기'의 전형을 만나 자괴감이 들었다. 기술규제와 관련해 이뤄진 학술연구 분야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서구 선진국에서는 기술규제와 관련해 환경·에너지 46%, 컴퓨터·공학 30%, 의약·보건 13%, 행정·경영 11% 등으로 모든 분야에 골고루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전체의 75%가 법학 일변도라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 따로, 그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는 것을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사람 따로 연구를 하고 있는 데 비해 선진국에서는 이들이 협업해 규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술규제는 기술, 산업과 관련한 실질적 문제보다는 공익성, 안전, 환경보호 등의 문제로 기울어지기 쉽고 기술이 사업으로 이어지기 어렵게 만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산업연구원의 우리나라 산업 연관관계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연관관계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각 분야의 1등들로 큰 우리 산업들이 뭉쳐서 '한국판 어벤저스'를 만들겠다는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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