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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굴레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25 16:24

수정 2018.12.25 16:24

[여의나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굴레

2011년 가습기 살균제, 2016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2018년 BMW 화재까지 소비자의 대규모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폭스바겐 배기가스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고 폭스바겐은 미국에서만 과징금 4조7000억원, 소비자 피해보상 17조4000억원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과징금 370억원만 부과받았고, 한국 소비자를 위해 내놓은 피해배상은 100만원 쿠폰 지급이 전부다.

이런 차이를 원인으로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집단소송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이 가해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의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가해자에게 징벌적 목적으로 실제 손해보다 많은 배상책임을 지우는 제도다.


대한민국에 관련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단소송은 2005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2017년부터 일부 도입해 운용되고 있다. 다만 큰 사건에서 국민이 적절한 피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 제도에 근본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집단소송은 증권소송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가습기 피해,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은 애당초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대한변협 등의 노력으로 손해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BMW 화재사건과 같이 피해자들이 신체적 상해를 입지 않은 경우 재산상 손해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사업자의 반복적 위법행위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필자는 2016년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 모임'을 결성해 1200명의 변호사와 교수들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노력을 주도했다. 다음 단계로 제조물뿐 아니라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국회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넓히고 한도를 현행 3배에서 5배로 상향 조정해 현 제도를 강화하려는 입법을 활발히 논의 중이다.

문제는 법원이다.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법원이 부과할 수 있다'고 돼 있으므로 실제로 발생한 사건에 실제 손해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실제로 부과하느냐는 담당 판사의 의지에 달려 있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합리적 조직이다. 평소에 안전조치를 대충 하고 막상 사고가 나면 손해배상을 조금만 하고 넘어갈 수 있다면, 굳이 평소에 철저한 안전조치를 하는 데 큰 비용을 투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사회적 움직임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사회적 책임보다는 굴레로 인식하는 듯하다. 물론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개발과 투자지출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기업의 노력은 치열한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가져올 것이며, 경쟁력 강화는 결국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소비자의 의식 수준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높아진 소비자의 의식 수준에 발맞춰 나가는 것은 기업과 사회의 의무다. 포괄적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은 우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제도의 신속한 도입을 위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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