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청춘들에게 미래를 허하라

미래세대에 짐 떠넘기니 비토층으로 바뀐 청년층
내일에 대한 희망을 줘야

새해 벽두다. 현실은 고달프더라도 희망의 샘물을 길어 올리고픈 때다. 지난 한 해 심각한 청년취업난 등 우울한 소식이 잔상으로 남은 탓일까. 주변에서 만나는 청년들의 어깨는 왠지 처져 보이고, 표정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연말부터 신년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라. 청년들의 불만은 수치로 입증됐다. 특히 리얼미터가 지난달 10~14일 실시한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 조사 결과가 눈에 띄었다. 20대 남성의 지지율(29.4%)이 전 연령대에 비해 가장 낮아서다. 촛불을 들고 문재인정부 탄생에 도왔던 지지층이 시나브로 비토층으로 바뀐 셈이다.

하긴 서구에서 '앵그리 영맨'(성난 젊은이들)이란 말이 왜 나왔겠나. 어느 시대든 젊은 층은 사회에 불만이 많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네 청년들의 '성난 얼굴'이 취업도, 결혼도 어려운 팍팍한 '오늘' 때문만이 아닐 듯싶다. 청년수당 등 정부가 쥐여주는 당근이 적어서도 아닐 게다. 서울교통공사 등 몇몇 공공기관에서 불거진 고용세습 정황 등 불공정 사례도 그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청년층 이반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러 요인이 겹쳐 20대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20·30대(1980∼2000년대 출생)를 지칭하는 '파이(P.I.E)세대'란 신조어가 있다. 개성(Personality), 자신에 대한 투자(Invest in Myself), 소유보다 경험(Experience) 중시 등이 키워드이지만 그 함의는 처연하다. 아득바득 저축해도 집을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월급 털어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심경이라면….

물론 청년 일각의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백안시할 이유도 없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에 최적화된 삶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나무랄 일인가. 다만 여기에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은 청년들의 절망이 스며들어 있다면? 필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 기성세대들이 뼈아프게 여겨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정부가 청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소득주도성장론 등 내놓는 정책마다 구직 대열의 청년층과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위기로 내몰고 있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얼마 전 20대 비정규직 청년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귀족노조가 고용세습 등 갑(甲)질을 하는 동안 '맨발의 청춘'은 안전하게 발 디딜 곳조차 없었던 셈이다.

물론 '사람이 먼저다'라는 국정 슬로건은 거룩하다. 하지만 이를 구현할 실력을 보이지 못하니 청년층이 이탈하는 게 아닌가.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만 봐도 그렇다. '더 내고 덜 받자'며 기성세대에 솔직히 고통분담을 호소하긴커녕 '덜 내고 더 받을' 요술방망이가 있는 것으로 호도하는 인상이 들 정도다. 청년들이 연금뿐만이 아닌 제반 복지정책으로 인한 부담이 자신들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모를 리 만무하다.

미래세대에 짐을 떠넘기는 일이 다반사인데 이들이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한 일이다. 최근 국정 비판의 타깃으로 경제뿐만 아니라 남북관계가 꼽히는 여론의 흐름도 주목된다. 정부는 연말 거액의 예산을 들여 언제 공사가 시작될지 모를 경의선 착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신년 여론조사에서 이로 인한 '컨벤션 효과'는 없었다. 이제 북핵 폐기 없는 '평화쇼'만으론 내일이 불안한 청년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정부는 지지율 하락을 막으려면 청춘들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란 믿음을 줘야 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