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시리즈]

배냇저고리부터 수의까지, 한땀한땀 상처입은 마음을 꿰매다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 협동조합' 운영하는 곽경희씨
1500명의 또다른 엄마가 되다
공부 그만두는 미혼모 보면서 배냇저고리 해주자 마음 먹어..이제는 속싸개·애착인형도 제작
봉사는 삶이자 행복..첫아이 사고로 잃고 죄책감
다른 아이들에 그만큼 정성 다해 자식 키우듯 끝까지 할거예요

서울 은평구에서 30년째 한복집을 운영하는 곽경희씨는 미혼모 입양아를 위한 배냇저고리와 홀몸 어르신이 입을 수의를 직접 만들어 기부한다. 사진=서동일 기자
어릴적 엄마는 손수 바느질을 했다. 가족 모두의 조끼를 다 뜰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한 땀 한 땀 바늘 코를 늘려나갔다. 완성된 조끼를 입고 다닌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따뜻했다. 겨울이 오기 전, 빨리 한 겹이라도 더 입히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이 담겼기 때문일거다.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 협동조합의 이사장 곽경희씨(59)도 바느질을 한다. 한복 만드는 경력만 30년이 넘은 베테랑 그녀는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직접 만들어 가족이 없는 홀몸 어르신과 미혼모 입양아에게 기부한다. 기부한 옷들만 수의는 100벌, 배냇저고리는 1500벌이 넘는다. 탄생부터 죽음까지, 곽씨는 그들의 '엄마'가 된다.

■'재능'이 '봉사'로 이어져

곽씨의 봉사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은 나이에 좋아하는 일을 금방 찾았다. 한복과 파티복을 만들며 정신없이 일했다. 돈 버는 재미에 몸이 상하는 줄도 몰랐다. 정상인의 간 수치가 대개 40까지인데 비해 곽씨의 간 수치는 2000까지 올라갈 만큼 건강이 나빠졌다. 자식들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 병원 복도에 멍하니 있다보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병원을 나온 뒤 닥치는 대로 봉사활동을 알아봤다. 첫 봉사로 천사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이 시간만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천사원으로 달려갔다.

"한 번은 추석에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 '아, 나 바느질 잘하지. 이걸로 봉사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마침 병원 봉사를 할 때 보호자가 없어 수의도 없이 침대 시트에 싸여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길로 수의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수의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사람이 입는 옷만 20가지 종류가 넘었다. 만드는 데에 한 달 이상이 걸렸고, 돈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형제들이 후원자가 돼 줬다. 언니랑 동생들이 나눠서 옷을 함께 만들고, 멀리 사는 오빠는 돈을 보내줬다.

처음부터 수의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많은 홀몸 어르신들이 대기표를 뽑고 기다릴 정도였다. 일 년에 10벌 이상을 만들었다. 현재는 일 년에 2~3벌 정도로 줄였지만, 그땐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곽경희씨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바늘한땀 협동조합'에서는 입양아들이 입을 배냇저고리에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이 커서 볼 수 있도록 메시지를 남기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1500명의 엄마가 되다

곽씨는 한 번 한 일은 끝까지 해야하는 성격이다. 공부도 이상하리 만큼 안 멈춰졌다고 했다. 42살의 나이에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를 들어갔다. 2년제를 졸업하고 나니 욕심이 생겨 방송통신대로 편입했다. 하루는 학교를 통해 '구세군 두리홈'이라는 미혼모시설에 배냇저고리 만드는 법을 강의하러 간 일이 있었다. 곽씨는 "처음엔 미혼모들과 서먹서먹했다"면서도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학교를 못가니 사회에서 버려진 느낌'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아이들이 공부를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봉사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혼모들에게 배냇저고리를 해주자'고 생각했다. 2012년 7월, 그렇게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엄마품속의 천사봉사대'가 만들어졌다. 3명으로 시작했던 봉사자가 100명이 되고, 150명이 됐다. 현재 봉사대를 운영하는 인원은 10여명이다.

이듬해에는 사회적기업 '바늘한땀 협동조합'도 설립했다. 곽씨는 "그 전까진 바느질도 하고 회의도 할 수 있는 교육장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우정선행상'을 받은 이후 안전행정부에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지원금으로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우리들끼리는 '우정상의 기적'이라고 부른다"고 웃어 보였다. 우정선행상은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의 호를 따서 2001년 제정한 상이다.

규모가 커지니 봉사 욕심도 커졌다. 친환경 천으로 애착인형도 만들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바느질 봉사 강의를 나가면서 생긴 재료 수익금으로 속싸개 만들기도 시작할 수 있었다. 곽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입양보내려했던 미혼모들도 배냇저고리를 만들다가 다시 키우겠다고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며 "그런걸 보면 하나라도 더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런 생각으로 만든 배냇저고리만 벌써 1500개가 넘었다.

■"재능기부로 봉사 물려주고파"

곽씨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우선 바늘한땀 협동조합에서는 이달 중으로 배냇저고리와 속싸개, 애착인형을 만들 수 있는 반제품 형식의 키트(kit)를 선보일 예정이다. 수익금의 10%는 미혼모 장학금으로 쓰인다. 신생아를 위한 모자도 만들려고 생각 중이다.

사실 미혼모 장학금은 곽씨가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사업이다. 한때 후원금을 원단값으로 주겠다는 한 기업 회장님을 설득해 미혼모들에게 장학금을 준 경험이 있어서다. 지금은 회장님이 은퇴하면서 명맥이 끊겼지만, 아직도 곽씨는 미혼모들이 아이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제가 갑자기 아프게 되더라도 누군가는 바느질 봉사를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반제품 키트도 만들게 됐죠. 장학금은 미혼모들이 자기 손으로 아이들 양말 한 켤레라도 사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미혼모들의 교육으로까지 이어졌으면 해요. 입양갔다 돌아온 아이들에게 한복을 만들어주고 싶기도 하고… . 하나하나 성장시켜 나가야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현재 한복집과 협동조합 사무실로 운영되는 공간을 교육장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도 있다. 지금보다 많은 미싱 기계를 들여놓고 미혼모뿐 아니라 다문화 여성, 장애인 등에게 옷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바늘한땀 협동조합은 배냇저고리뿐 아니라 애착인형도 만들어 기부한다. 곽씨는 "속싸개도, 모자도 만들어 주고 싶은 게 바람"이라고 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봉사는 곧 자식

"아무 데도 말한 적 없는데…" 봉사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곽씨는 조금 무겁게 운을 뗐다.

"첫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사고로 잃었어요. 나중에라도 만나면 해준 게 너무 없는 것 같아 한 동안 큰 죄책감에 시달렸죠. 하지만 그 아이에게 줄 노력과 정성을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달할수록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는 많이 내려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곽씨에게 봉사는 삶과 인생과 행복이다.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곽씨의 네 가족은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란히 손잡고 봉사를 다닌다.

"제 아이들도 처음 봉사를 데리고 갔을 땐 툴툴대더라고요. 그런데 두어번 가고나니 나중엔 봉사 가자고 먼저 저를 깨우더라니까요. 지금까지도 봉사를 손에서 놓지 않아요. 제 아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봉사의 싹을 틔워주고 싶어요. 봉사가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 싶거든요."

곽씨는 자연스럽게 아들 자랑을 시작했다.
"봉사는 자식같은 존재인데, 자식을 언제까지 키울지 정해놓나요? 끝까지 키워야죠. 봉사도 끝까지 할거예요"라며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에선 여전히 '우리 엄마' 같은 따스함이 슬며시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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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