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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국치 현장에서 배우는 외교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6 16:47

수정 2019.01.06 16:47

[차관칼럼] 국치 현장에서 배우는 외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정동극장 옆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붉은 벽돌의 서양식 2층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중명전(重明殿)이다.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리던 건물로, 1899년쯤 황실도서관 용도로 세워졌다. 한때 고종 황제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극의 현장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 1월 3일 제6기 외교관 후보자 44명이 정규교육 첫날 일정으로 중명전을 찾았다. 2013년 외무고시가 폐지된 후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이 신설됐다.
시험에 합격한 후 국립외교원에서 11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정식 외교관으로 임용된다.

후보자 교육은 공직소명의식, 전문성, 실무역량, 영어 및 제2외국어 등 4가지 분야에 중점을 둔다. 국립외교원 교수진을 주축으로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강의를 한다.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외교현장의 살아있는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외교부 전직 대사들과 현직 간부들도 강단에 선다. 외교부 본부에서 4주, 해외공관에서 4주 동안 하는 실습 과정을 통해 당장이라도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현장감각을 갖춘다.

필자는 후보자들에게 단순한 외교기술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외교 합의문서의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나라의 장래와 민족사의 흐름에 어떤 결과로 연결되는지 철저하게 뜯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904년 2월 체결된 한일의정서에서 한일 양국은 '항구 불변할 친교를 유지하고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하여'(제1조)라는 목적을 제시했다. 그리고 일본은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확실히 보증'(제3조)한다고 약속했다.

일본에 한일의정서는 러일전쟁에서 조선을 군사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수단이었다. 조약문에 포함된 '항구 불변할 친교'와 '독립과 영토보전'이라는 문구는 허울뿐이었고, 1년10개월 후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보호국으로 전락시킨 을사늑약으로 가는 포석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이 일본에 대해 제기한 것은 조약문안 거부나 핵심조항 수정이 아니라,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보증'한다는 조문을 추가해달라는 요구가 전부였다. 아무 문제의식도, 역사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립외교원이 외교관 교육의 목표로 '치열한 역사의식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외교인재 양성'을 내세운 것은 바로 이런 교훈 때문이다.

교육 과정을 시작하는 새내기 외교관 후보자들에게 중명전과 같은 부끄러운 외교사 현장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하루빨리 자랑스러운 외교역사 현장, 외교승리의 기념비부터 참관하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한반도에서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을 제거하고,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는 안전보장의 질서를 건축하는 일이 지금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한국 외교관들이 그 설계도를 만들고,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에 성공한다면 그때는 외교관 후보자들이 한반도 평화협정 탄생의 산실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교육 과정의 첫날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조세영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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