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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재계 신년사 관통한 '마하경영'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0 17:05

수정 2019.01.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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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재계 신년사 관통한 '마하경영'

돼지해는 희망과 위기를 동시에 품은 해다. 1990년대 이후 첫 돼지해인 1995년은 2년 연속 9%대의 경제성장률로 호황을 누렸지만 2년 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직격탄을 맞았다. 2007년 역시 경제성장률(5.5%)이 5년래 최고치를 찍어 앞날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 곪아터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1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와 치명타를 입혔다. 경제성장률은 2008년 2.8%로 1998년(-5.5%) 이후 최저치로 하락했고, 2009년에는 0.7%로 곤두박질쳤다.

돌아보면 공교롭게도 돼지해는 경제 전반의 격변기를 앞둔 시기였다.
다만 우리 민족에게 돼지는 다산과 부, 행운 등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길상의 동물이다. 돼지꿈을 용꿈과 함께 최고의 길몽으로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목이 두꺼워 하늘을 보기 어렵고, 눈높이의 울타리도 넘지 못해 위기대응 능력은 떨어진다. 이런 특성은 성장에 도취해 다가오는 굴곡의 시기를 무방비로 대처했던 이전 돼지해의 상황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어김없이 돼지해가 돌아왔지만 직면한 상황조차 녹록지 않다. 세계은행(WB)이 예상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기존 3.0%보다 낮춰 잡은 2.9%다. 미·중 무역분쟁,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금융불안,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 등이 잿빛 전망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성장을 주도해 온 미·중의 경제성장 속도가 더디고 위기요인은 증가한 게 문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두말할 나위 없다. 경제성장률은 2017년 3.1%에서 지난해 2%대로 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하는 등 우울한 전망 일색이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자동차산업은 후진 중이고, 반도체의 성장세는 주춤해졌다. 여타 업종들도 내리막길이다.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등 경영환경은 불확실성의 터널에 갇혀 있다.

재계가 신년사에 '도전'과 '혁신'을 쏟아낸 것도 닥쳐오는 파고를 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안팎으로 극복해야 할 난관이 산적해 있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지형 급변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험로를 걸어야 한다. 그만큼 기업들의 생존전략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경영전략은 방향과 속도의 조화가 절대적이다. 갈 길을 정확히 잡아도 늦으면 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방향은 이미 4차 산업혁명으로 모아졌다. 관건은 속도다. 이런 변화를 일찌감치 예측한 재계 총수가 있다. 혁신의 리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그는 2014년 와병 직전까지 전략적 통찰력으로 '마하경영'을 강조했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기 위해선 설계도는 물론 엔진, 소재, 부품 등 모두 바꿔야 하듯 기업들도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한계 돌파'를 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이다. 빛의 속도만큼 빠른 혁신으로 핵심역량을 재창조하고 강화해야 퍼스트무버가 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이를 위해선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전반적으로 마하경영은 올해 재계 신년사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위기와 도약의 중대 갈림길에 선 한국 경제의 명운은 기업들의 혁신에 달렸다. 목표를 향해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리면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패권 확보는 시간문제다.
기해년 역시 과거와 다른 돼지해로 한국 경제사에 기록될 것이다. 다만 혁신은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정부, 노조 등 전방위 협력 없인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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