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기재부, 신재민 고발 물러라

춘풍추상 내세우는 정권이 청년에 속좁은 모습 보여서야
홍남기 부총리가 결단 내리길

최근 들은 말 중에 춘풍추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줄인 말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스스로를 대할 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하라는 뜻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실에 액자를 선물했다.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은 "비서실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 되새겨야 할 사자성어"라고 말했다. 맞다. 권력을 쥔 이들은 춘풍추상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분수를 잃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을 춘풍추상 공식에 넣어보자. 청와대에 파견근무하던 6급 검찰 수사관이 민정수석실을 헤집었다. 이 수사관은 졸지에 미꾸라지가 됐다. 행시 출신 5급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국가채무 관리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돌연 망둥어가 됐다. 4급 청와대 행정관은 아버지뻘 육참총장을 카페에서 만나 군 인사를 논의했다. 청와대는 "행정관이라고 총장을 못 만나란 법은 없다"며 그를 두둔했다. 춘풍추상이 뒤집어졌다. 남을 대할 땐 서릿발을 세우고, 자기를 대할 땐 봄바람처럼 순하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옛날 제갈량은 부하 마속을 칼로 베었다. 마속은 제갈량 친구의 동생이다. 병법에 밝아 제갈량도 매우 아꼈다. 하지만 명령을 어기고 싸움에 지자 눈물을 머금고 참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미국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모범사례로 링컨과 만델라 두 대통령을 든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마무리될 즈음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자"고 호소했다. "복수 대신 국가의 상처를 감싸자"고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 곧 인종차별정책 아래서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는 증오 대신 화해를 배웠다. "만델라는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사람들을 용서하고, 놀랍게도 그들을 이끌 수 있었다." 올브라이트는 말한다. "링컨과 만델라는 둘 다 괴물들과 싸웠다. 하지만 둘 다 괴물이 되지 않았다."('파시즘'·2018년).

국민은 '괴물' 박근혜정부를 단죄했다. 국회는 탄핵했고, 헌법재판소는 파면했다. 정권도 넘어갔다. 후임 문재인정부는 적폐청산의 칼을 힘껏 휘둘렀다. 그렇게 1년8개월이 흘렀다. 이제 뒤를 돌아볼 때가 됐다.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된다는 속담이 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다. "문재인정부 유전자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섬뜩했다.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신재민 전 사무관에 대해 "자기가 보는 좁은 세계 속의 일을 갖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젊은 공직자가 소신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기재부더러 고발을 취하하라고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한 이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당신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을 고발한 것은 패착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고발 취하를 "개인적으로 깊이 검토하겠다"고 했다. 깊이 검토할 것 없다. 문 대통령과 현 정권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고발을 무르는 게 낫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