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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독박육아와 저출산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4 17:36

수정 2019.01.15 08:40

[fn논단] 독박육아와 저출산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독을 권했었다. 우리 시대 한 여성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결혼과 출산, 일과 육아-을 다큐화법으로 기록한 소설인데 어떻게 그렇게 큰 관심을 끌었을까? 필자가 보기에 이 소설의 힘은 여자의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는 신종 선입견에 시원하게 한 방을 먹인 그 효과에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 시대 대부분의 성인남녀들은 우리 사회가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엔 고개를 갸웃거린다. 우리 사회 제도 운영 어디에도 이제 차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전혀 불평등하지 않다는 이 사회가 한 여자의 입장에서 살아보면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지수는 전 세계 100여개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서 맴돈다. 이런 평가를 부정하며 못 믿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는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중단이 일상적인 나라는 양성평등국가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이 평가는 매우 리얼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육아휴직을 전후해 직장여성의 대략 반 정도가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돌아가는 사회이다. 뭔가 일을 계속하며 아이를 키우기에는 안 맞는 환경이 있다는 단적인 증거 아닌가? 아직도 너무 많은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임신을 결정할 수 없으며, 심지어 특수한 조건의 직장(병원의 여의사)에서는 자신의 순번을 기다려 계획임신을 해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 한 곳에선 '여성의 직장생활은 아이 낳기 전, 아이 키운 후에나 바람직하다'고 보는 편견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가지면 남자는 여전히 일이 우선이고, 여자는 일과 육아를 똑같이 중시해야 하는 현실. 이른바 독박육아의 사회이다.

물론 서구사회도 전에는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꾸준히 늘어 가사나 육아를 여자만 당연히 하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맞벌이 가정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1시간36분인 데 비해 남성의 가사노동은 18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2014년 생활시간사용조사). 이런 불평등은 우리와 일본에서 특히 유난스러운 것 같다. 일본의 맞벌이 부부들의 일상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아내와 남편이 일을 끝내고 돌아와도 식사를 차려내고 애를 돌보는 사람은 아내이며, 남성의 육아휴직을 권장하지만 사용률은 여전히 저조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러니 인구장관을 따로 두고 전체 출산율 제고에 안간힘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은 최근에 좀 올라가서 1.45에 불과한 나라로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총인구가 감소하는 국가군에 이름을 올리는 게 아닌가.

오래 전 한 논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둘째자녀 출산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소득수준도, 근무형태도, 주거여건도 다른 뭣도 아니며 남편의 육아 참여의 수준이었다.
우리 사회도 지난해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가 전체의 16.9%(상반기 기준)에 이르는 바람직한 변화를 보였다.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촉진시키는 공동체 육아의 실험도 확산되고 있다.
남성의 가사노동과 아빠의 육아 참여를 당연시하는 제도적 뒷받침과 작은 실천들이 모이고 쌓여서 독박육아가 사라지는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이재인 (사)서울인구포럼 대표 ssahn@fnnews.com 안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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