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제쯤 '법앞의 평등' 말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법앞의 평등' 말 할 수 있을까

지난 17일 서초동엔 두 노인이 있었다.

한 80대 노인은 그날 오전 대법원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난 4년간의 법적 다툼에서 패한 게 심경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오후 한 70대 노인은 푸른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대법원장이 탄 차량에 화염병을 던져 피고인이 됐다.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묻는 재판부에 법전을 뒤지며 수십 번 암기했을 법률용어를 섞어가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두 노인은 재판에 대한 불신을 극단적 선택으로 표출했다. 한 명은 절망했고, 다른 한 명은 분노했다. 공정성 최후의 보루인 법원, 그중에서도 최고인 대법원 판결까지 받고서 말이다. 죽음과 폭력을 불러올 만큼의 억울함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화염병을 던진 노인은 3개월을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하다 범행을 저질렀다. 그곳을 지나다니던 어느 누구도 그 노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관철되지 않자 결국 삐뚤어진 생각을 행동에 옮겼다.

재판은 어떤 분쟁에 대해 재판부가 내리는 공적 판단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절차이므로 절대적인 신뢰가 담보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10월 고려대 산학협력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69.3%로 한국사회 전반(76.7%)은 물론 입법부(74.1%)와 행정부(73.6%) 같은 삼권분립 체제 국가기관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진다.

법원에 대한 분노의 발화점은 이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믿어야 할 곳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쌓여 해선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사법부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 혼란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법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약속이다.
재판도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혹이 생긴 시점부터 우린 '법 앞에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사법부로부터 위법·부당한 침해를 제가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재판장께 감히 말씀 드립니다." 대법원장에 테러를 가한 피고인의 외침이 귓가에 남아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