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사법부 치욕의 날' 前대법원장 영장실질심사 출석...법원 앞 '전쟁터'(종합)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3 16:50

수정 2019.01.23 17:16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구속 기로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3일 오전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구속 기로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3일 오전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법부 71년 역사상 첫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게 된 전직 사법부 수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심경도 밝히지 않은 채 까마득한 후배 법관에 신병을 맡겼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검사 출신의 명재권 부장판사(52·27기) 심리로 이날 23일 오전 10시 30분께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렸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 심사가 열리기 약 5분 전 법원에 도착했으나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그대로 법정에 들어갔다. 그는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구속 심사를 받게 된 심경에 대해 말해 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잠깐 멈칫했으나 옆에 있던 최정숙 변호사(52·23기)에 이끌려 침묵을 지켰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포토라인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前대법원장, 핵심쟁점은 '직권남용'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40여개의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상대가 전직 대법원장인 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날 심사에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양석조 특수3부장 및 부부장검사들을 투입, 총력전을 펼쳤다.

이 가운데 핵심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 단계에서 관련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했으나 검찰은 260쪽에 이르는 영장 청구서를 제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신분의 특성상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 심사는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27기)가 맡았다. 앞서 검찰은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48·28기)에 의해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 전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바 있다.

■진보·보수시민단체 공방
법원 인근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놓고 진보·보수시민단체 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집회가 벌어졌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해 "양승태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연신 외쳐대며 법원의 구속 결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들 앞에는 현수막과 함께 법원공무원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받은 서명지 상자도 놓여 있었다. 이들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에 걸친 서명운동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구성원 3253명, 국민 1만12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은 3000명의 법관 중 최고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대법원장의 직책을 가진 자임에도 동료 법관을 사찰해 불이익을 주고 재판에 개입해 재판의 독립을 철저히 유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유연대를 필두로 한 보수단체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공정한 영장심사를 진행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현 정부가 멋대로 사법부를 유린하는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정치 행동"이라며 "사법부가 붕괴되고 있는 오늘은 사법부 수치의 날"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법원 주변에 수백 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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