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법부 치욕의 날'… 前 대법원장 영장심사 '치열한 기싸움’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3 17:38

수정 2019.01.23 17:38

양승태, 5시간30분 마라톤 심리.. 취재진 질문에 심경 피력 안해
법원앞 진보-보수단체 격렬 집회.. 직권남용죄 성립 여부 놓고 설전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중앙로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해 구속 사유를 두고 5시간 넘게 검찰 측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중앙로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해 구속 사유를 두고 5시간 넘게 검찰 측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법부 71년 역사상 첫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전직 사법부 수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심경도 밝히지 않은 채 까마득한 후배 법관에 신병을 맡겼다.

검사 출신의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52·27기)가 맡아 이날 2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오후 4시 무렵까지 무려 5시간30분 가량 마라톤 심리로 진행됐다. 중간 쉬는 시간은 점심 휴정시간 약 30분이 끝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검찰 양측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웠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정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빗발치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포토라인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핵심쟁점은 '직권남용'

이날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심문에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비롯한 부부장급 검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양 전 대법원 측에서는 최정숙·김병성 변호사가 변론을 맡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40여개의 혐의를 받는다.

이 가운데 핵심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 단계에서 관련 혐의에 대해 모두 부인했으나 검찰은 260쪽에 이르는 영장 청구서를 제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검찰은 이 같은 혐의가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며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신분의 특성상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심문을 마친 뒤 영장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기 위해 서울구치소로 이동했다.

같은 날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 심사는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27기)가 맡았다. 앞서 검찰은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48·28기)에 의해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 전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바 있다.

■진보·보수시민단체 공방

법원 인근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놓고 진보·보수시민단체 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집회가 벌어졌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해 "양승태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연신 외쳐대며 법원의 구속 결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한 이들 앞에는 현수막과 함께 법원공무원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받은 서명지 상자도 놓여 있었다. 이들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에 걸친 서명운동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구성원 3253명, 국민 1만12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양 전 대법원장은 3000명의 법관 중 최고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대법원장의 직책을 가진 자임에도 동료 법관을 사찰해 불이익을 주고 재판에 개입해 재판의 독립을 철저히 유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유연대를 필두로 한 보수단체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공정한 영장심사를 진행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현 정부가 멋대로 사법부를 유린하는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정치 행동"이라며 "사법부가 붕괴되고 있는 오늘은 사법부 수치의 날"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법원 주변에 수백 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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