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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누구를 위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인가---정부개정안에 소비자단체-온라인쇼핑업계 모두 불만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4 15:15

수정 2019.01.24 15:15

상품 공급자 아닌 플랫폼 기업에 소비자피해 보상 강제
업계.학계 "정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없이 일방 통행" 지적
온라인 쇼핑에서 소비자피해가 발생할 경우 통신판매 중개업체와 판매업체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놓고 온라인 쇼핑업계가 발끈했다. 소비자보호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정안이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어 시행될 경우 전자상거래산업의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져 전자상거래 시장이 위축되고 관련 산업과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업계는 물론이고 소비자단체도 정부가 이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의 제대로 수렴하지 않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해당사자 의견수렴 소홀 등 절차적 정당성 안지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실과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 23일 ‘전자상거래법 전부 개정 법률안 토론회’를 열었다. 개정법률안은 포털쇼핑, 배달앱, 오픈마켓 등 온라인 중개 서비스(플랫폼)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상품공급자(제조업체)가 아닌 플랫폼을 제공한 기업이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기준이 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이 법안은 지난 16년간 14회 개정이 이뤄졌으며, 개정 때마다 외부 연구용역 및 관련 업계, 학계, 법조계의 자문 등을 거쳐 신중하게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 과정에 있어서는 이전과 달리 아무런 절차나 검증 과정 없이 진행되면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개정안이 플랫폼을 이용해 상품을 공급, 판매한 실제 사업자가 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 현재의 법률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내용임에도 핵심 이해당사자와 제대로 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법률안이 만들어졌다"며 “이제라도 소비자단체와 학계, 업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서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소비자가 거래 당사자를 확인하기 어려움 △소비자 및 소상공인의 후생에 역행 △진입 장벽 상승으로 소상공인 퇴출 및 창업-일자리 감소 △온라인 중개사업 고사 우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법안 등을 지적했다.

판매 vs. 중개 행위 명확한 기준 없어 혼란 야기
한국소비자원 정신동 박사는 “개정안에서 통신판매자와 통신판매중개자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상거래의 기본인 거래 당사자를 알 수 없도록 만드는 문제가 있다”며 “법적 계약관계를 기초로 하지 않는 법규정으로 인한 혼란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통신판매업체와 통신판매중개업체를 한 묶음으로 통칭하게 되면 소비자는 누구와 거래를 한 것인지 혼동할 수밖에 없고, 이는 더 큰 혼란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업 모델과 법적 지위 자체가 다른 업체들을 동일하게 규제하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반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인천대 문상일 교수는 “상법에서 다른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는 판매행위와 중개행위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현행 사법체계와 맞지 않다”며 “엉뚱한 규제로 인한 기업들의 비용 증가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개업체와 판매업체에 동일한 책임을 부과하게 되면, 중개업체들은 불가피하게 영세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진입 장벽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건국대 서종희 교수는 “중개업자들이 입점 심사를 필요 이상으로 강화할 경우 상당수 영세소상공인들이 해당 플랫폼에서 퇴출될 수 있다”며 “과도한 규제로 인해 청년창업의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는 신규 온라인 창업 시장에도 진입 규제의 역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터넷기업협회 박성호 사무총장은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에 모든 책임을 지우려는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가뜩이나 기존 규제로 인해 어려운 사업환경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 온라인쇼핑 산업 위축·고용감소 등 부작용 불보듯"
기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오픈마켓이나 포털쇼핑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온라인쇼핑협회 김윤태 부회장은 “판매업체와 중개업체 간 책임 범위가 같아진다면 굳이 중개 비즈니스를 영위할 필요가 사라질 것”이라며 “매년 두 자릿수 성장율을 보여왔던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세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개사업모델의 틀을 유지한 채 소비자보호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화된 자율규제방안을 담고 이를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리감독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통신판매중개업자에게 통신판매업자와 동일한 책임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안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인터넷기업협회 박성호 사무총장은 “미국 아마존과 이베이, 중국의 알리바바, 일본 라쿠텐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통신판매중개업을 기초로 성장했다”며 “대부분 국가에서는 소비자에게 거래의 책임 당사자에 대해 명확하게 고지하는 방법으로 소비자 보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전재수 의원은 "무엇보다 소비자 단체, 업계, 학계 등의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사전에 충분히 청취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산업·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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