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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다시 정치로 물드는 국민연금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4 17:12

수정 2019.01.24 17:12

文 대통령 가이드라인 제시
수탁자委 결정 무시해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정부는 대기업·대주주의 중대한 탈법·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말한다. 문 대통령은 그 위에 '대통령 가이드라인'을 더했다. 시장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오는 3월 주총을 앞둔 대한항공과 한진칼, 특히 조양호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코드 언급은 몇 가지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무엇보다 전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정치로 물들게 생겼다.
앞으로 기금운용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기금운용위는 기업으로 치면 이사회에 해당한다. 당장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24일 "국민연금이 국민의 집사가 아니라 정권의 집사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정부 사례에서 보듯 국민연금은 정치에서 멀리 떨어지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전 정부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절차를 경시하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말한 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열렸다. 지난 16일 기금운용위는 산하 수탁자위원회에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수탁자위는 주주권 행사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통상적인 절차를 따른다면 기금운용위가 전문가 집단인 수탁자위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맞다. 그런데 하필 이때 대통령 발언이 나왔다. 기금운용위는 딜레마에 빠졌다. 대통령 가이드라인을 무시할 수도 없고, 수탁자위가 낸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기금운용위로선 지는 게임이다.

해법은 이렇다. 대한항공·한진칼 현안에 대해 기금운용위는 수탁자위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국민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이 5년 단임 정권에 휘둘려선 안 된다. 나아가 중장기적으론 기금운용위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기금운용위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겸하는 현 지배구조 아래선 중립성 확보가 어렵다. 20인 기금운용위 구성 자체를 전문가 그룹으로 바꿀 필요성도 있다.
국민연금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국민연금법 1조)이다. 그러려면 수익률 향상이 급선무다.
지금은 공무원·사용자·근로자·지역대표들이 기금운용위를 이끌어 간다. 적립금 637조원(작년 10월 말)에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 최상위 의결기구에 금융투자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당최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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