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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집값 하락의 기억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4 17:12

수정 2019.01.25 08:50

[윤중로] 집값 하락의 기억

지난해 8월 말, 전세계약을 재연장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2500만원이나 올려달라 한 탓이다. 증액은 기존 전세자금 대출 연장이 안되고 신규대출 형태로 다시 해야 한다고 해서 한참 동안 각종 서류에 서명을 했다. 중간중간 시간이 나서 멍하니 있는데 옆칸에서 심각한 상담이 오가는 탓에 절로 귀가 쫑긋 섰다. "집을 사기 위해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려고 왔는데 예상보다 금액이 4분의 1도 안 나와서 충격 받고 그냥 돌아갔어요."

사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내놓은 2017년 8·2 부동산대책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크게 줄였다. 지난해 3월 은행권은 모든 대출에 대한 원리금을 포함해 대출금액을 산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했다.
당시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자 공급을 늘리는 대신 대출을 틀어막았다. 지금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김수현 당시 사회수석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 김 실장은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에서 "참여정부가 진작 DTI 규제를 강하게 했더라면 집값을 더 빨리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실기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주택의 절대부족 때문에 가격이 폭등한 것이 아니라 과잉유동성에 따른 수요 증가가 가격을 밀어올렸다. 진작 금융대책을 펼쳤어야 했는데, 유동성이 부동산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부가 주저했고, 그러는 사이 부동산 가격이 다락처럼 올라버렸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대출을 옥죄는 8·2대책에도 구멍은 있었다. 바로 전세자금 대출이었다. 은행에서도 주택 담보대출이 막히자 전세대출은 오히려 권장할 정도였다. 전세 사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 정부 당국도 은행도 손을 놨다. 무분별한 전세대출은 고가 주택을 양산하는 숙주(宿主) 역할을 담당해왔다. 8·2대책 이후에도 1년 넘게 집값이 급등한 것도 전세대출이 한몫을 차지했다.

결국 지난해 발표된 '9·13대책'에 전세대출 규제책도 담겼다. 이른바 '다주택자 전세보증 요건 강화'다. 다주택자는 전세자금 대출이 안되며 '1주택 초과분을 보증 연장 후 2년 내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1회에 한해 연장을 받을 수 있다. 1주택자도 부부 합산 소득 1억원이 넘으면 공적 전세대출 신규보증을 받을 수 없고 민간 보증인 서울보증보험(SGI)에서 전세대출보증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보증료율이 높다. 전세대출까지 틀어막은 9·13대책은 부동산 시장에 먹구름을 몰고왔다. 서울의 경우 입주물량 급증에 보유세 증가까지 겹치면서 본격적인 약세장에 접어들고 있다.

다시 돌아가 김 실장의 책에는 부동산 하락 때 풍경도 그렸다. "첫 번째 징후는 거래가 줄어드는 것이다. 팔려는 사람은 얼마 전의 비싼 값을 기대하는 반면, 사려는 사람은 집값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래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팔려고 내놓았는데도 아무도 보러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는 '거래를 살려 서민들을 보호하자'는 얘기가 단골로 나온다.
" 김 실장이 2011년 7월 책을 내놓으며 묘사한 상황이 8년 만에 다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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