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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공기업 인력 '동맥경화'… 출구 터줘야 청년일자리 열린다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7 16:49

수정 2019.01.27 16:49

강문순 증권금융 선임기자 
늙어가는 공공기관
文정부 들어 임직원 10% 증가..평균 근속연수 가장 긴곳 22.2년
명예퇴직금 민간기업보다 적어..임금피크제 적용받더라도 남아
정부 공공일자리 확대 나섰지만 고비용 인력구조가 걸림돌로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공기업 인력 '동맥경화'… 출구 터줘야 청년일자리 열린다

2013년 11월 박근혜정부 당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공기관들을 향해 "이제 잔치는 끝났다"고 했다. 과잉복지에 각종 비리, 부채 증가 등 방만경영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는 공공기관에 대해 개혁을 선언하면서다. 현 부총리는 "과거 정부에서 공공기관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 위기관리 실패 시 정부에 큰 재정부담을 줄 수 있다"며 공공기관 통폐합 등 개혁 수준의 특단 대책을 동원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흘러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공공기관 비대화 논란이 일고 있다. 일자리를 국정의 맨 앞에 내세운 문재인정부가 임기 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만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하면서다. 사상 초유의 고용대란으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마당에 공공기관을 통해, 그것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아주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가 않다. 신규 공공사업은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늘리기에 한계가 있다.인력순환 역시 명예퇴직 등의 퇴로가 사실상 막혀 있어 '동맥경화'에 걸린 상황이다.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공기업 인력 '동맥경화'… 출구 터줘야 청년일자리 열린다

27일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의 신규채용은 3만3685명으로 전년보다 49.4%나 늘었다. 정부가 지난해 초 계획한 2만8000명보다 5000명 이상을 더 뽑았다.

신규채용이 늘면서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지난해 31만4354명으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28만5641명보다 2년 만에 10% 넘게 늘었다. 5년 전인 2013년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뽑은 수치다. 여기에 무기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포함하면 361개 공공기관 임직원 수는 46만5650명(2018년 9월 기준)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15만9109명, 즉 34.2%는 비정규직이다. 여기에 인턴은 포함하지 않았다.

■늙어가는 공공기관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안정성이다. 공공기관은 대부분 독점이라 민간기업에 비해 경쟁도 적다. 고용안정성을 잘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평균 근속연수다. 지난해 정규직 평균 근속연수가 가장 긴 공공기관은 한국조폐공사로 22.2년이다. 그 뒤를 한국세라믹기술원(21.9년), 한국기술교육대학교(21.1년)가 이었다. 직원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평균연봉도 급증하고 있다. 공공기관 중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예탁결제원으로 복리후생비까지 합친 평균 연봉이 1억1484만원이다. 한국전기연구원(1억59만원), 울산과학기술원(1억40만원),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1억40만원)가 뒤를 이었다. 종합연봉 상위 15개 기관은 모두 금융기관과 과학·기술연구원이다. 361개 공공기관의 2018년 평균 연봉은 6681만원이다. 평균 1인당 복리후생비는 186만원, 둘을 합친 종합연봉의 평균 금액은 6765만원이다.

인건비 비중이 큰 공공기관의 특성상 조직의 고령화가 심해지면 재무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공공기관 중장기 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39개 주요 공공기관 부채가 지난해 480조8000억원으로 5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공공기관 부채는 올해부터 매년 늘어나 2022년에는 54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공기관 부채는 결국 국민의 부담이라는 점에서 우려된다.

■퇴로 막혀 인사적체 심각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공기업의 인사적체도 심각하다. 1990년을 전후에 입사한 50대 중·후반 직원들이 내년부터 차례로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는데, 4~5년 뒤면 임금피크를 적용받는 직원이 전체의 10~20% 안팎에 이르게 돼 조직 노령화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국책은행과 금융 공공기관 사이에서 희망퇴직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임금피크제는 만 55~56세 안팎이 되면 만 60세인 정년까지 해마다 연봉이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제도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그 인건비로 청년 채용을 늘리라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이 빠르게 늘면서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뿐만 아니라 신용보증기금, 예탁결제원, 기업은행 등 금융권에서 임금피크제는 큰 고민거리가 됐다. 비금융권에서는 석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기재부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22년이 되면 산업은행 직원 3200여명 중 550여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다. 산업은행 직원 6명 중 1명이 만 55~56세가 넘는다는 뜻이다. 예탁결제원은 지금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율이 4%에 불과하지만 2022년에는 12%까지 늘어난다. 신용보증기금도 지난해 9%에서 14%까지 높아진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금융 공공기관 직원의 퇴직금을 많이 줘서 희망퇴직을 하면 10명이 퇴직할 때 7명의 젊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다"며 공공기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기재부나 감사원은 공공기관이 인건비 총액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게 규제한다. 가뜩이나 고액연봉을 받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나간다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유명무실한 명예퇴직제도

민간과 달리 공공기관에서는 희망퇴직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손에 쥐는 명예퇴직금이 작으니 임금피크제에 걸리더라도 남아 있는 게 낫다. 실제 공공기관은 2014년 기재부가 마련한 명예퇴직 제도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은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이 희망퇴직을 할 경우 회사에 정년까지 남아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연봉의 280~290%)의 절반 이하만 퇴직금으로 주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위 등은 정년까지 남아있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 일정액의 위로금을 더 얹어줘서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의 퇴로를 열어주자는 의견이다.

반면 연초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한 시중은행의 경우 월평균 임금의 36개월(3년)치를 특별위로금으로 받는다. 공공기관과는 격차가 크다. 공공기관의 명예퇴직금이 일반기업 대비 턱없이 낮다 보니 2014년 제도 시행 이후 수년간 대부분의 공공기관의 명예퇴직 건수가 '제로'에 가깝다. 특히 상대적으로 고연봉자가 많은 금융 공공기관은 '퇴로'가 막혀 인사적체가 심각하다. 고비용 인력구조는 신규 채용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추경호 의원은 "국민 부담으로 운영되는 일부 공기업과 금융 공공기관에서 임금피크제 부작용으로 인해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는데도 문재인정부는 대안 마련 대신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만 집착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희망퇴직 방안과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청년일자리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인사적체도 정부 작품

사실 공공기관은 작은 예산 하나라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담당부처와 기재부에서 예산과 인력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최근 공공기관 지정 이슈로 몸살을 앓는 금융감독원이 대표적이다. 감사원의 방만경영 지적을 받은 금감원은 2년째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작년 요구한 3급 이상 인력 감축방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공공기관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 요구를 맞추려면 100여명을 더 줄여야 하는데 내보낼 수는 없으니 젊은 직원 승진길을 틀어막으란 얘기다.

거슬러 올라가면 금감원의 현재 인력구조조정은 정부 지시에 따른 결과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총리실이 주도해 신규채용 직원의 20%가량을 경력직으로 채우게 하고 재취업 금지를 4급까지 확대했다. 외부와 유착을 막겠다는 의도에서다. 이때 충원했던 경력직이 대거 승진해 3급이 됐고 재취업도 막히다 보니 고참 비중이 급증한 것이다. 인력을 구조조정하려면 민간으로 이동할 길을 터주거나 명퇴 같은 대체수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취업은 유착 우려 탓에 명퇴는 돈이 든다며 퇴짜를 맞았다. 10여년 전만 해도 40대 중반이면 팀장이었지만 이젠 40대 후반은 물론 50대 팀장이 수두룩한 이유다.


최근 기재부가 유명무실한 공공기관 명예퇴직 제도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고연봉 직원의 퇴직을 유도하는 동시에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베이비붐 세대인 고연차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2022년 이후에 정년을 맞아 일시에 대거 퇴직을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해당 기관의 인력구조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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