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AI, 현대차를 베껴라

자동차 산업은 현재 반도체 다음으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금이야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들조차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수소차를 개발한 현대자동차지만, 지난 1975년 이탈리아 조르제토 주지아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한 '포니'를 출시했을 때엔 지금 같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미션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해 연구진들이 밤을 새워가면서 일본차의 미션을 베껴 기술을 습득했다. 그러던 회사가 지금은 글로벌 톱5의 자동차회사가 됐다.

우리 항공산업은 어떤가.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지난 17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KAI는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에 대한 환상을 깨고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KAI의 T-50이 미국 록히드마틴이 설계한 비행기라며 우리는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KAI의 새 먹거리로 민항기를 언급했다. 남과 북의 갈등이 해소되면 백두산으로 관광객을 실어나를 민항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군수공장에서 벗어나 진정한 항공우주업체로 태어나겠다"는 김 사장의 의지와 달리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도 그럴것이 KAI는 지난해 미 고등훈련기 사업자 선정 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플랜 B'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기대했지만 생뚱맞게도 그는 '백두산관광'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김 사장 희망대로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대북사업의 선봉장인 현대아산도 이렇게는 말하지 못한다.

KAI는 1999년 현대, 삼성, 대우의 항공부문을 통합해 설립한 회사다. 그 역사가 벌써 20년이다. 그간 정부가 나서서 전투기 사업을 명목으로 자금과 물량을 몰아줬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현대차가 불과 40여년 만에 글로벌 톱5 자동차 기업이 된 것과 비교한다면 현대차에 미안할 정도다. 현재 KAI는 가능성이 희박한 그림에 희망을 걸고 투자할 수준이 안된다.
들러리라도 서서 경쟁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성과 없는 비전은 공허하다. 지금까지 분식회계 의혹 등으로 흔들렸던 조직을 안정시켰다면, 이젠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fact0514@fnnews.com 김용훈 산업부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