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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부메랑 된 트럼프 무역전쟁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30 18:17

수정 2019.01.30 18:1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호무역을 강화하며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국 소비자와 기업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관세전쟁에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 대표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와 반도체기업 엔비디아 등이 28일(현지시간) 실망스러운 실적을 내놨다. 캐터필러는 지난해 4·4분기 순이익이 10억5000만달러로 시장 예상치(16억9000만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짐 엄플레비 캐터필러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수요 감소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이 부진했다"고 말했다.

캐터필러 실적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다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글로벌·중국 제조업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캐터필러의 중국 매출 비중은 전체의 10% 수준이다. 엔비디아도 중국을 비롯한 거시경제 여건 악화로 4·4분기 매출 전망치를 18.5%나 낮춘 22억달러로 제시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이번 실적 시즌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중국)의 경기 둔화에 대한 경고"라고 언급했다.

앞으로도 실적이 부진한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브로드컴·마이크론·코보·스카이워크스·윈리조트 등을 '중국발 어닝쇼크'가 우려되는 기업이라고 언급하며 투자 자제를 경고했다.

지난해 미국의 가전업체 월풀은 수년간 삼성, LG 등 한국 세탁기 때문에 자국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다며 정부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요청했다. 트럼프 정부는 그해 2월 수입 세탁기 중 120만 대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이에 마크 비처 월풀 최고경영자(CEO)는 "의심할 여지 없는 호재"라고 반겼다.

하지만 월풀의 실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작년 3·4분기 월풀의 영업이익은 1년전보다 24%나 줄었다. 반면 직접적인 관세 피해자인 삼성과 LG는 관세를 미리 예상하고 사전에 재고를 쌓아둔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시장조사업체인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9.1%, LG전자 17.2%, 월풀은 15.7%를 각각 기록했다. 한국업체의 점유율 합은 36.3%로 지난해 36.9%에서 소폭하락했는데, 월풀도 16.3%에서 15.7%로 피해를 봤다.

결국 피해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4~6월 미국의 세탁기 가격은 3개월간 19.9% 올라 40년만의 최고치 상승폭을 보였다. 제품값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 기업 실적이 나빠진다. 2017년 미국은 대형 세탁기를 월 평균 35만대 수입했지만 관세가 부과된 후에는 월평균 16만1000대로 감소했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 기업의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관세전쟁에 승자가 없다는 것은 역사로 기록된다. 1930년 미국 '스무트-홀리법'이 대표적이다. 공화당의 두 의원의 이름을 딴 이 법은 수입품의 평균 관세를 기존 30% 수준에서 60%로 크게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1929년 미국의 경제가 휘청거리자 미국 기업들은 정부에 수입 제한을 요청했다. 정부도 중서부 농업지대의 유권자들의 표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주요 무역국들은 즉각 반발, 관세 보복에 나섰고 결국 전세계적인 무역 장벽이 세워졌다. 그러자 이듬해 미국의 수출량은 30% 넘게 줄었고 미국 소비자는 더 비싼 값에 제품을 사야 했다. 미국 기업들도 원자재값이 올라 이익이 크게 줄었다.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25%로 치솟았다. 결국 1932년 6월 이 법을 제정한 스무트와 홀리 의원은 낙선했으며 법은 폐기됐다.


'월스트리트 제국'을 쓴 미국의 경제역사가 존 스틸 고든이 말한 '무역 전쟁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다'는 역사적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금융·증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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