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원칙으로 돌아가자

지난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전국적으로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소송에서 침묵은 자백으로 인정되는데, 일본의 태도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자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강점기의 폐해를 청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도 그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법조계 역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

일본은 고등고시라는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도 이를 시행했다. 국가가 소수 엘리트를 선발한 후 모든 지원을 하면서 이들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운영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법조인 역시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법률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어렵다. 변호사의 업무를 보충할 직역이 필요했다.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변호사가 처리해야 할 각종 법률사무를 법무사, 변리사, 세무사 같은 유사직역을 만들어서 임시방편으로 보완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와 제도는 서로 맞물려 있다. 사회가 변하면 제도도 바뀌게 된다. 제도가 변경되면 사회도 이에 맞추게 된다. 서로 어긋나게 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우리 사법제도는 2009년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갑오개혁 이후 최대의 변화를 겪었다. 고시라는 소수 엘리트 법조인 양성 제도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수의 법조인 배출이라는 로스쿨제도로 전환했다. 유사직역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유사직역도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내부에서 밥그릇 싸움이 치열해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하던 변호사 업무의 보완적인 역할을 넘어서 본래 자신들이 할 수 없었던 각종 소송대리를 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법률전문가에 의해 신체, 재산권을 보호받아야 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술을 잘 한다고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몸을 맡기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의 신체와 건강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의과대학이라는 일정한 교육기관에서 교육받고 국가가 정한 의사고시라는 자격시험을 통과한 의사만이 수술을 할 수 있게 제도화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신체, 재산권, 가족관계 등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법률사무도 반드시 국가에서 정한 법률교육과 변호사시험이라는 자격취득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일 유사직역에서 변호사의 고유영역인 소송대리를 하고자 한다면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방식대로 로스쿨에 진학해 체계적인 법률교육과 소송능력을 익히고 국가가 공인하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된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생략한 채 단순히 해당 분야의 업무에 대해 경험과 지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짜로 소송이라는 변호사의 고유업무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전 세계 어느 선진국가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가 어려운 무리한 요구이다.

변호사가 1만명이 되는데 100년이 걸렸다. 이제는 7년에 1만명씩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다. 변호사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비용 역시 합리적으로 조정되고 있다.
제도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법조유사직역에 의한 불완전한 법률서비스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처럼 국가가 인정하는 교육방법과 자격시험을 통과한 법률전문가들에 의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법률서비스 역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원칙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이찬희 대한변협회장 당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