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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나쁜 선례 남긴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결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01 16:48

수정 2019.02.01 16:48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1일 한진칼에 대한 제한적 경영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에 대해선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20인 기금운용위가 이날 4시간 넘게 이어진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했다. 그 첫 케이스로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이 걸린 셈이다.

이날 기금운용위(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대체로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진그룹 주력사인 대한항공을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 대상에서 뺀 것이 좋은 예다. 또 한진칼에 대해서도 경영에 참여하되 그 범위를 좁혔다. 곧 회사 정관 변경은 추진하지만 이사 해임 안건 등은 주주권 행사 범위에서 제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몇 가지 나쁜 선례를 남겼다.

먼저 기금위는 스스로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차지하는 현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기금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장관 임명권자가 바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대기업·대주주의 중대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1일 기금위 결정엔 어떻게든 대통령의 '지침'을 반영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기금위가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때 오늘날과 같은 일이 생길까봐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위를 출범시켰다. 수탁자위는 지난달 23일 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해 7대 2, 한진칼에 대해 5대 4로 경영참여에 반대했다. 기금위는 이 중 한진칼에 대한 의견을 무시한 채 제한적 경영참여 결정을 내렸다. 수탁자위의 첫 작품을 일부 뒤집은 셈이다. 이럴 거면 뭐하러 수탁자위를 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의 물꼬가 터졌다. 앞으로 대기업은 실적과 무관한 '오너 갑질' 논란만으로도 국민연금의 워치리스트에 오를 공산이 커졌다. 본란에서 누차 강조한 대로 우리는 먼저 기금위가 제 지배구조부터 손질하기를 권고한다.
박근혜정부가 남긴 교훈이 뭔가. 국민연금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어떤 결정이든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기금위가 수탁자위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땐 더욱 그렇다.
기업 지배구조를 탓하기 전에 국민연금 지배구조부터 바꾸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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