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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스튜어드십 코드가 뭐길래

강문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08 15:28

수정 2019.02.08 15:28

스튜어드십 코드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경영 참여에 이어 남양유업에는 배당 정책을 담당하는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을 하기로 결정하면서다. 물론 주주로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간섭은 필요하지만, 국민연금이 모든 기업의 경영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주 입장에서야 배당이 많을수록 좋지만 기업입장에선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300곳에 이른다. 가뜩이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인력 이탈로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백곳의 경영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도 쉽지 않다.
기업 투자시 최선의 선택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말 그대로 관리인·집사(스튜어드)가 지켜야 할 규칙(코드)이다. 여기서 집사는 증권사·은행 등 기관투자자고 주인은 고객의 투자금이라고 보면 된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했고 지금은 20여곳에서 시행 중이다. 탄생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금융기업들의 문제점을 진단한 '워커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대상 회사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의 산물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의제로 떠오른 계기가 된 것은 2015년 7월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다. 당초 스튜어드십 코드는 장기적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의 향상, 그리고 지속 가능한 기업과 국민경제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관투자가의 역할 규범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공공부문 투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을 콕 집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겠다고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대주주의 탈법과 위법이 있으면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국민연금이 나설 일이 아니다. 공적자금 운용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연금 운용 원칙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기금 운용수익률이 엉망이 되고 국민의 노후가 더 불안해질 게 뻔하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공적자금 운용과 관련해 정치의 개입과 간섭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이사회에는 정부 인사가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CPPIB의 투자 원칙과 방향을 바꾸는 것은 헌법 개정보다 힘들다고 할 정도로 독립성이 강하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아예 주식 운용 및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100% 민간 운용사에 맡겼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정치적 오·남용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선진 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나 사회적 책임 투자의 목적은 연기금의 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특정 기업 오너 일가의 일탈 행위에 대해 정의사회를 앞장 서 구현하려는 기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국민의 미래 노후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기금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금융·증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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