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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회담 하노이에서…北 54년만에 베트남 국빈방문도 관심

뉴스1

입력 2019.02.09 14:07

수정 2019.02.09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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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 정상회담 뒤 북-미 정상회담 관측
김정은, 하노이서 베트남 개방 모델 눈여겨볼 듯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로 결정되면서 '하노이 선언'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국빈 방문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설 명절 이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는 로이터통신 기사를 감안하면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북-베트남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은 권력서열이 당 서기장, 국가주석(외교·국방), 총리(행정), 국회의장(입법) 순이다. 지난해 9월 쩐 다이 꽝 국가주석 사망 이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이 국가주석도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를 국빈 방문해 응우옌 서기장을 만난다면 약 54년만에 양국 최고 지도자 간 베트남 회담이 성사되는 것이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외교 관계를 설립했다.
이후 1957년 7월 베트남 국부 호찌민은 평양을, 1958년 11월과 1964년 11월 김일성(당시 내각 수상)은 당시 북베트남을 방문했다.

양국 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64년 베트남에 미국이 군사 개입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듬해에 한국이 파병을 결정하자, 북한은 군인들과 물자를 보낼 정도로 끈끈한 유대를 보였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북한의 베트남 경제 지원 감소, 통일 정책에 대한 이견 등으로 관계는 다소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중월전쟁 때 북한이 중국 편을 든 것도 관계가 느슨해지는 배경이 됐다. 또 1992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 2005년 베트남 탈북자 대량 한국 송환 등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2007년 호찌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농 득 마잉 총비서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며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또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김일성 방문 60주년을 맞은 지난해 11월 베트남을 찾기도 했다.

베트남은 정치 체제 변화를 꾀했던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중국과 더불어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개혁 및 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개방 모델을 눈여겨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개방 모델에서 베트남이 중국과 다른 점은 해외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축적된 자본과 높은 시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 공을 들인 반면 내수시장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베트남은 FDI뿐 아니라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다.

베트남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차관과 원조 자금을 도로, 전력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 투자함으로서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트남은 19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도입한 이후 평균 6%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도 6% 중반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또 수출가공구 및 공업단지 특구제도를 도입하는 등 수출업 육성 정책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6.6%에서 현재 90%를 웃돈다.

북한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내부 자본이 부족하고,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해외자본유치와 국제기구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에선 2013년부터 외자유치를 목표로 하는 경제개발구가 만들어지면서 2017년까지 총 22개가 지정됐다. 기존 특구 5개를 포함해 경제개발구는 27개에 달한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및 경제 제재 해제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선 베트남이 패전을 안긴 나라이기는 하지만 대외개방정책,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아세안 지역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는 점을 북한에 보여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의 리더십 아래 북한은 '위대한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며 "그(김정은)는 놀랄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알게 됐고, 그가 얼마나 능력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은 다른 종류의 로켓이 될 것이다. 경제적인 로켓!"이라고 적었다.

미국은 1975년 4월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베트남 전역으로 경제 제재를 확대했다. 이후 베트남이 관계 개선을 요구하자 미군 유해 송환과 실종자 문제, 캄보디아에서의 베트남군 철수 등 선행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베트남군이 1989년 캄보디아 철수를 완료하자, 1990년 정부 간 직접대화가 시작됐다. 이듬해엔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임시 사무소가 하노이에 설치됐고, 1992년에는 워싱턴에서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고위 당국자 간 비공식 회담이 열렸다.

이를 바탕으로 1995년 1월 양국 간 연락사무소가 개설됐고, 같은 해 7월 11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다. 베트남이 도이머이 정책을 도입한 지 9년 만에 미국과 베트남은 역사적 화해를 했다.

국제 경제로의 편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제 제재는 1994년 전면 해제됐고, 1995년에는 베트남이 아세안에 가입했다. 2000년에는 미국-베트남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2006년 실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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