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현장클릭] '눈치입시'가 불러낸 허수지원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4 14:59

수정 2019.02.14 14:59

[현장클릭] '눈치입시'가 불러낸 허수지원

90:1
벌써 10년 전이다. 고3 가을, 대학 원서를 접수하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접속한 원서 접수 사이트엔 무시무시한 경쟁률 숫자들이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내가 합격하려면 90명을 이겨야하네…' 덜컥 겁이 났다. 결국 원하던 과 대신 적성에도 맞지 않는 사범대에 지원했다. 당시 그 대학의 사범대 경쟁률은 20:1 수준이었다. 물론 20명도 제치지 못하고 떨어졌지만, 인생이 바뀔수도 있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홍익대학교 2019학년도 정시 특별전형에 지원한 한 수험생이 경쟁률을 높이려 지인 5명을 동원해 허수지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험생 A씨는 홍익대 뿐 아니라 앞서 중앙대에서도 같은 부정행위를 벌여 결격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 측은 A씨가 허수 지원자를 통해 경쟁률을 의도적으로 늘린 뒤 탈락을 지레 겁먹은 다른 학생들이 아예 지원하지 않는 점을 노리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고작 지인 5~6명으로 정말 다른 사람의 지원을 막고 본인이 합격할 수 있다고 봤을까?'란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A씨가 지원한 전형이 '고른기회전형'이었다는 사실이다. 고른기회전형은 수능 응시자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하는 정시 특별전형이다. 각 과마다 보통 한 명, 많게는 두 명 밖에 선발하지 않는다. 자격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지원자 자체도 많지 않다. 정원인 한 명인 과에 다섯 명만 지원해도, 벌써 경쟁률은 5:1이 된다.

높아진 경쟁률을 본 다른 수험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기자가 경쟁률이 90:1인 학과에 지원하지 않은 것처럼 좀 더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눈을 돌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전형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부정행위로 인한 피해자 발생 여부는 너무나 명확해진다.

문제는 실시간 경쟁률 공개 시스템이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낮은 경쟁률에 들어보려는 전국 수험생들끼리의 '눈치 싸움'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해당 전형에 지원 자격도 안 되는 수험생들이 일단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지원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교육부 측은 "당장 시스템의 전면 개선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한국 교육열에 비춰봤을 때 경쟁률을 실시간으로 공개하지 않으면 불투명한 지원 시스템이라는 비난을 더 크게 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원 자격을 충분히 갖춘 학생들만 걸러 허수 없는 경쟁률을 공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자격 조건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우선 지원하고 보는 현상도 보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 사람의 일탈로 시스템 전체가 바뀌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탈로 치부해 버리는 순간 매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양산되는걸 묵과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온 국민이 관심갖는 입시 부정행위 문제인 만큼 교육부는 입학처장과의 간담회에서 상식적이고 의미있는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취재 도중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경쟁에 지친 어린 친구가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경찰의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잘못은 벌하고, 교육부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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