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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90세 기업인이 낸 숙제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9 16:50

수정 2019.02.19 16:50

미국 대학들은 지난해에도 '기부금 풍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미국 929개 대학이 받은 기부금은 총 467억달러(약 52조5000억원)였다. 전년 대비 7.2% 증가한 액수로, 9년 연속 신기록 행진을 이어온 것이다.

하버드대(총 14억달러·약 1조6000억원), 스탠퍼드대(11억달러·약 1조2365억원), 컬럼비아대(10억달러·약 1조1240억원)는 기부금 10억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기부금 입학제나 기부액의 50%에 대해 세금감면을 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지만 놀랍다. 특히 한번에 1억달러 이상 뭉칫돈을 받은 대학도 7곳에 달했다니…. 그래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부문화 자체가 시들고 있는 우리의 세태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지난 18일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90)이 예금 등 사재 500억원을 모교인 서울대 공과대학에 쾌척했다. AI센터 신축에 써달라면서다. 그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전국 20개 대학 공과대학 건물에 해동도서관 건립을 지원하는 등 이공계 연구자들에게는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노환으로 입원 중인 그는 언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모든 공학 분야에 소프트웨어를 접목해야 한다"고 기부 취지를 설명했다. 김 회장은 평소 "우리 산업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어야 하는 변곡점에 왔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인 김영재 대덕전자 사장은 "(아버지가) 그 도전을 뚫고 갈 교육이 필요하다며 '학교에 숙제를 낸다'고 했다"고 전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목사 존 하버드가 세운 하버드대가 노벨상의 산실이 된 원동력이 뭔가. 정부 지원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민간 기부금이었다.
누구든 평생 모은 재산을 선뜻 내놓는 일이 어디 쉽겠나. 그렇다면 고학으로 학업을 마치는 등 온갖 간난신고를 겪은 김 회장이 낸 기부금도 '과학 보국(報國)'의 마중물이 돼야 마땅하다. 더욱이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 과학상 불모지'다.
노기업인이 낸 숙제를 서울대, 아니 우리 학계 전체가 풀 차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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