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택시가 가엾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5 17:21

수정 2019.02.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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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라질 운명이라고 벼랑끝으로 내몰아서야
경사노委서 지혜 모아보길
[곽인찬 칼럼] 택시가 가엾다

타임머신을 타고 150년 전 영국 런던으로 가보자. 거리엔 마차가 굴러다닌다.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이때 갑자기 증기자동차가 나타났다. 폭이 최대 9피트(2.7m)에 무게가 14t이나 나가는 육중한 물체다. 시속 10마일(16㎞)로 '쌩쌩' 달리는 차는 도로 위의 흉기나 다름없었다. 영국 의회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서 나온 게 붉은깃발법, 곧 적기법(1865년)이다. 의회는 공공안전을 맨 앞에 뒀다. 혹시라도 사람이 차에 치여 다칠까봐서다. 자동차에 놀란 말이 앞발을 쳐드는 것도 위험천만했다. 차가 길을 막거나 도로에 흠집을 내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적기법의 핵심은 세 가지다. 기사는 세 명을 두라. 속도는 교외에서 시속 4마일(6.4㎞), 도심에서 2마일(3.2㎞)을 넘지 마라. 기사 중 한 명은 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라. 물론 마차와 자동차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그 뒤엔 마차업계의 강력한 로비가 있었다. 이 법은 1896년 새로운 법이 나올 때까지 30년가량 지속된다.

적기법이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먼저 기술혁신은 억지로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촘촘한 보호막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차산업은 망했다. 또 다른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혁신은 저항에 부닥친다는 점이다. 영국 의회는 신기술을 걷어차고 기득권을 보호했다. 의원들이 바보라서? 그럴 리가. 영국은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다. 산업혁명도 이 나라에서 처음 시작됐다. 내가 150년 전 영국 의사당에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적기법에 찬성했을까 반대했을까. 아마도 찬성 쪽으로 기울지 않았을까 싶다.

국내 택시업자들이 화가 잔뜩 났다. 목숨을 건 분신도 잇따른다. 등등한 기세에 카카오는 자회사가 하려던 카풀사업을 중단했다. 승기를 잡은 택시업계는 쏘카와 타다 영업까지 문제 삼았다. 그런데 이번엔 택시업계가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쏘카 이재웅 대표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홍남기 부총리를 향해 "어느 시대 부총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쏘아붙였다. 홍 부총리는 "공유경제는 기존 이해관계자의 반대라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도입이 어렵다"고 했다가 졸지에 구닥다리 관료가 됐다.

이재웅의 말이 맞다. 다만 나는 우리 사회가 택시 기사들의 분노에 좀 더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많은 이들이 택시의 저항을 냉소적으로 보는 듯하다. 야밤에 골라 태우는 짓이나 그만두라고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린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우리 사회는 택시 기사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카풀을 막고 계속 택시를 타고 다니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택시는 사라지게 돼 있다. 단지 사라지는 과정이 좀 더 인간적이면 좋겠다. 그 점에서 나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을 높이 평가한다. 전 의원은 당내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아 어떻게든 해법을 찾으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끝내 TF에서 풀지 못하면 택시·카풀 이슈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넘기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난제를 풀었다.

택시 기사들에게 당부한다. 산업혁명 때 러다이트로 불린 영국의 직물노동자들은 직물기 발명가 집에 불을 질렀다. 독일 뱃사공들은 증기선에 올라 모래를 뿌렸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머잖아 기사가 필요없는 자율주행차가 나온다. 마차, 인력거는 진작에 사라졌고 이젠 택시 차례다.
이럴 땐 차라리 혁신에 능동적으로 올라타는 게 슬기롭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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