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중재외교 벗어나 당사자로 나서야


"트럼프 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지금까지의 진전과 성과를 이루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2018년 11월 30일 한·미 정상회담)

"트럼프 대통령님의 통 큰 결단과 새로운 접근법으로 지난 수십년간 누구도 해결 못했던 문제가 해결됐다."(2018년 9월 24일 한·미 정상회담)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비전과 리더십 덕분이다."(2018년 5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대화 중재를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달래기용으로 내놓은 발언들이다. 문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지도력과 결단을 처음 언급한 건 지난해 3월 9일 북·미가 1차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직후 내놓은 입장문에서였다. 한반도 문제의 모든 성과와 공(功)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이 발언은 그의 면전에서건, 미국 언론을 향해서든, 워싱턴 조야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마치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됐다. 이 횟수는 약 1년간 무려 20회가량 된다.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 6월엔 3회, 북·미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그해 9월엔 5회나 했다. 이쯤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귀에도 딱지가 앉을 법해 보인다. 노벨평화상과 재선에 초점을 맞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전략적 외교수사는 일관되게 지속됐다.

비핵화 진전을 위한 설득 노력도 있었다. 지난해 5월 한국 대통령이 '극한 직업'임을 실감케 하는 1박4일 워싱턴 출장일정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문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나란히 앉혀놓고 "북한의 비핵화조치를 견인하기 위해 종전선언을 왜 해야 하는지"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했다고 한다. 청와대 한 참모의 표현을 빗대자면 '강의' 수준이었다. 과거 2006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처음 제안했다고는 하나, 미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단계적 조치로 분리해서 보게 된 건 최근 일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양자 모두 어디까지나 완전한 비핵화 후에 건네지는 상응조치 정도로 봤다.

10·4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2007년 9월의 일이다. 당시 호주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 언론발표 현장,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년 전에 제의했던 종전선언을 두루뭉술하게 언급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은데 우리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니까 명확히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전쟁을 우리가 끝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무기를 검증이 가능하도록 폐기해야 할 것 같다"고 다소 짜증 섞인 반응을 내놓았다. 종전선언을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중간단계 수준으로 축을 옮겨놓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위한 물밑 외교가 있기에 가능했다.

기대치를 높였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결렬됐다. 문 대통령의 중재외교도 고비를 맞이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임기 말년 레임덕 기간을 제외하곤 사실상 임기의 반환점을 돈 셈이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
북·미 대화 중재자로 판만 깔아주는 모양새는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포지션 전환을 어렵게 한다. 하노이에서 비행거리로 5~6시간 떨어진 서울에서 이 상황을 앉아서 지켜봐야 하는 한국 외교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남·북·미 대화로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