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평판은 임기가 없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서 걷는 기분이었다. 지난달 21일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됐다. 소싯적에 공부로 누구에게 기죽어 본 적이 없다는 2만5000명 넘는 변호사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일제 때는 독립투사들을 변론했고, 독재정권에서는 민주주의 수호의 최전선에 나섰다. 다른 직역단체와 달리 이 땅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활동했다는 자부심이 강한 단체다.

스스로를 후하게 돌아봐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이처럼 중요한 단체의 대표자가 되다니 영광스럽기 그지없다. 더욱이 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1965년 이후 가장 젊은 변협회장, 여러가지 불리함을 극복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 지지 등으로 포장된 여론의 주목은 잠시 어깨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선 축하인사와 함께 보낸 친구의 문자메시지로 금방 평상심을 회복했다.

"세상 모든 자리에 임기가 있지만, 평판은 임기가 없다. 하물며 우리 인생도 임기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평판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임기가 끝난 후에도 국민과 회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협회장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이래서 오랜 친구는 때론 인생의 스승이 되기도 하다.

사람인지라 어려움을 겪고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누구든지 자만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짧을수록 좋다. 스스로 자만에 빠졌다는 사실은 쉽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큰 실수를 예방하려면 일정한 성취를 얻은 경우에는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아 얻게 된 성취의 경우에는 더욱더 겸손해야 한다.

현재 여당이 집권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고 남다르게 노력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결코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실정과 당시 여당의 무능과 분열 등에 분노한 국민들의 선택 덕분에 예상된 수순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권력을 획득했다. 따라서 정상적 상황의 집권보다 몇 배나 더 겸손해야 할 조건이다.

최근 여당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판결을 놓고 의혹만으로 담당 재판장에게 과도한 인신공격을 했다. 주권자인 국민의 한 축을 형성하는 20대와 정치 파트너인 야당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상대적으로 야당보다 잘한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우수한 정치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최근 여당이 오만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하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자성의 목소리에 깊이 공감한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정치적으로 어느 쪽 성향도 아니다. 그저 잘하는 쪽에 박수를 보내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초동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시국선언을 주도했던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 전 잠시 자만에 빠졌다가 친구의 진정 어린 조언으로 크게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말해주고 싶다.

해도 떴다 지기를 반복하고, 달도 찼다 기울기를 반복한다. 세상 어떤 권력도 언젠가는 자리를 내줄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잘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도 애정이 있으니 이처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