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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사회적 대화, 속도보다는 방향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3 16:35

수정 2019.03.03 16:35

[차관칼럼] 사회적 대화, 속도보다는 방향

"유럽에서는 사회적 대화가 투자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경제성장과 노사화합을 이끌어준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해 4월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 워크숍'에 참석한 유럽연합(EU)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EU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사회적 대화라고 할 만큼 오랜 기간 쌓여온 파트너들 간의 신뢰, 중층적 대화시스템을 갖춰온 유럽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대화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한다.

4400만명의 조합원이 활동하는 유럽노총(ETUC)도 "사회적 대화를 위해서는 많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파트너 간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노사정위원회 발족 후 노사 간 양보와 결단으로 사회적 대타협 등을 통해 여러 경제위기를 극복해 온 의미 있는 성과들이 있었다. 하지만 노사 및 노·정 간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환경에서 정부 주도의 사회협약 추진은 안정적 대화체제 유지와 지속가능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분명한 한계 또한 있었다.


현 정부 들어 그간 중단됐던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고, 새로운 사회적 대화 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주영 위원장의 제안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참여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개최되고, 노사 중심의 논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했다.

새로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예전과 달리 청년·비정규직 및 소상공인 등 참여주체를 확대하고, 노사가 중심이 되어 경제·사회 전반의 현안을 논의하고 대안을 고민할 수 있도록 '협의기구'로서 논의체계를 정비했다.

노사 등 당사자들이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끌어가되 합의가 되면 반드시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후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확보할 것은 확보하는 조율과 협의를 통해 사회적 중의(衆意)를 모아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자 한 것이다.

지난 2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확대하되,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고 임금감소를 방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노사 간 입장 대립이 첨예한 사항에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함으로써 앞으로도 주요 현안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소중한 첫걸음이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 모두가 100%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조직적 입장이 다를지라도 공동체의 진전을 위해 자신의 이해를 조정할 줄 아는 것이 성숙하고 책임 있는 경제사회 주체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며 대화를 거부하고 반대만 한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의미 있는 진전은 요원해지고 갈등만 남게 될 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등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한창 논의 중인 핵심의제뿐 아니라 양극화 완화, 비정규직 및 청년일자리 문제 등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어 "많은 인내와 노력, 파트너들 간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유럽노총의 조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조금 더디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 사회적 대화이며,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고 이해를 조율하며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경험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노사정 모두의 책임 있는 자세와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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