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갈등을 넘어야 희망이 있다

갈등은 서로 다른 가치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을 말한다. 갈등은 각 사람의 내면에도 있고 가족, 친구, 직장, 집단, 지역, 민족, 인종 사이 어디에든 존재한다. 갈등을 표출하는 방법과 수준도 그만큼 다양하다. 갈등이 인격적, 윤리적, 신앙적 차원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위나 집단폭력 혹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어 집단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우리 국민에게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기본적 스트레스가 누적돼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까지 치르면서, 독재와 불공정 사회를 거치면서 생겨난 갈등과 피해의식 등이 제대로 풀리지를 못하고 유전적으로 쌓이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갈등도 쉽게 분노로 연결돼 모든 것을 위력으로 해결하려는 극단적 경향이 생겨나서 세계 10대 교역국의 위상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갈등지수는 최상위권이 됐다.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은 질서와 법이다. 질서는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구성원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 상식적 원칙을 지킬 때 세워지는 것이고, 법은 질서에 의해 해소되지 못하는 갈등을 국가의 힘을 이용해 강제로 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갈등 해결의 마지막 수단이어야 하므로 이성적이고 상식적 선에서 만들어지고 해석되고 집행돼야 하며, 법으로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질서가 아닌 법에 의해 조정됨에도 불구하고 법에 대한 신뢰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법이 정권에 의해 휘둘리기도 했고, 누가 적용대상이고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는 보이지 않는 '법 외의 법'이 존재한다. 국민정서를 내세우는 '정서법'이 있고, 자신의 이익이 관철될 때까지 떼를 쓰며 버티는 '떼법'이 그것이다. 이런 법들을 국제관계에까지 적용하려 할 정도로 우리 사회 전반에 관습화되면서 법이 갈등 조정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경비는 추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이를 바로 세워야 할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때때로 이 법들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지 모른다는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이리라. 이젠 이런 혜택을 누구도 누리려 하지 말자. 그렇게 못하면 정치는 그만두고 경제도 조금도 발전해갈 수 없고, 우리나라의 신뢰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집행이 공정하다는 것을 국민이 믿게 만드는 일이라면 조직을 바꾸든 새로 무엇을 만들든 무엇이든 하되 법의 결정에 따르는 모습을 지도자들부터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100년 전 3·1운동에서 우리 선열들은 갈등 해결방법으로 평화질서를 외쳤다. 힘의 상징인 법을 넘어 내편과 네편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평화질서가 지배하는 문화국가를 꿈꿨다.
그것이 포용국가라고 믿는다. 이 꿈이 이뤄질 때 국민의 행복도, 경제의 발전도, 통일도 있다. 구호는 멈추고 실천할 때다.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