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4 17:42

수정 2019.03.04 17:42

[기자수첩]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어릴 적 엄마한테 혼나고 집을 뛰쳐나온 적이 있다. 멀리까지 달아날 용기가 없어 주차된 자동차 틈에 쭈그려 앉아 눈물만 삼켰다.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품던 은밀한 마음은 생생하다. '이럴 거면 왜 낳아가지고.'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치기로 늦은 밤까지 엉엉 울었다. 불효막심한 의문을 품는 건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달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인도에 사는 27세 청년은 자신을 낳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할 계획이다. 그는 "태어나면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아기를 낳는 것은 잘못됐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게 죄라니.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국내법은 부모 고소를 막고 있다. 형사소송법 224조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은 고소할 수 없다. 단 성폭력과 가정폭력 사건은 예외다. 실제 모친과 불화를 겪은 한 대학교수는 "(법이)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까지 냈다. 2011년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정족수(6명) 미달로 법은 가까스로 유지됐다. 왜 부모를 고소할 순 없을까. 당시 헌법재판소는 '효'라는 고유 전통규범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는 행위의 반윤리성을 억제하고자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차별이라고 봤다. 관습 위에 법이 만들어진다. 효라는 사회윤리가 개인의 기본권보다 더 강한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판단이다.

우려스러운 건 뿌리가 급속도로 약해진다는 데 있다. 법이 최소한의 도덕이라면 그 도덕 자체가 변하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혹은 낳아줬다고 무조건 떠받들던 전통은 '꼰대'나 '틀딱'이란 표현 앞에 설 자리가 없다. 주변을 봐도 부모·자녀 관계는 봉양에서 각자 삶을 챙기는 친한 친구, 보듬어주는 사이로 재정립된다. 합계출산율이 0으로 수렴하는 오늘날. 헌재는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다가올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전과 같지 않을 것 같다.
단지 낳아줬다는 이유만으로 고소를 막는 법은 점점 공감이 희박해진다. 인도 청년의 외침에 부모가 한 답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두려움 없고, 독자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로 성장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사회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