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경제부흥을 위한 북한의 합리적 결정


2019년 2월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은 사실상 결렬됐다. 지난 1차 싱가포르 회담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던 비핵화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기자회견을 통한 진실공방은 향후 회담 전망마저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회담을 결렬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민주당으로부터 잘한 결정이라는 칭송까지 듣는 상황에서 크게 잃은 것이 없다. 오히려 국내 정치적 위기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회담 타결에 따른 '재팬 패싱'을 우려했던 일본 아베 신조 총리에게도 현재 상황은 나쁘지 않다. 북한의 후원자 격인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대미협상 카드로 더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은 삼일절 경축사를 갑자기 고쳐야 했고, 다시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북한의 도발이 없다면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즉 관련국가들 입장에서 회담 결렬이 반드시 우려스러운 상황만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회담 결렬로 인해 핵무기라는 애물단지를 안고 미국과 다시 지루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핵무기 없이 북한은 적정 수준의 경제력과 국방력만 유지해도 최소한 정상국가가 될 수 있었다.

애당초 합리적으로 판단해 보면 남한이나 미국은 핵무기 유무와 관계없이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을 선제적으로 도발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았다면 남한에 흡수통일 당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오히려 북한이 핵개발과 잇단 협정 파기로 자초한 경제적 고립이야말로 남한과 미국도 경제적 부담으로 원하지 않는 흡수통일을 초래할 수 있다.

핵무기를 가진 그리고 그렇게 자존심이 세다고 알려진 북한은 국가 정상인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나 베트남을 방문하기 위해 중국의 비행기를 빌리거나 65시간 기차여행을 해야 할 정도로 참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진정으로 '허심탄회하게' 협상하고, '통 크게' 비핵화를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아마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협상 결과를 굴욕적인 외교적 참사로 기억했을지 몰라도 북한 당국자들은 귀국하는 기차 안에서 전 세계 투자가들의 쇄도하는 투자문의를 받기에 바빴을 것이다.

1970년대 미국과 처절하게 전쟁을 했던 베트남은 1990년대 이후 경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북·미 회담을 위해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꺼이 23조원에 달하는 선물을 안길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당당히 참여하면서 중국을 대체할 세계 제조업 중심지로 그리고 글로벌가치사슬(GVC)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베트남은 북한이 오매불망하는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관광 수입 정도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15년 동안 베트남에서 활동한 KOTRA 최고의 현지 전문가에 따르면 지금 베트남 사람들은 과거 경제개발에 매진하던 남한 사람들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북한이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고, 지금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찾아 외부여건을 탓할 상황도 아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잠시나마 베트남의 발전상을 엿보았다. 김 위원장은 북한 경제를 부흥시킨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기를 진심으로 원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전략에만 매달리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자녀세대에 베트남과 같은 신흥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북한을 물려주기 위한 합리적 결정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