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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표류하는 녹지병원… 의료 혁신 포기했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05 17:22

수정 2019.03.05 17:22

정부 "판단은 제주도 몫"
17년 노력 헛수고 될 판
제주 녹지국제병원 갈등이 갈수록 꼬인다. 중국계 녹지병원은 지난달 제주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외국인 관광객만 진료할 수 있다는 허가조건에 반발해서다. 이에 맞서 제주도는 5일부터 허가취소 절차를 밟기로 했다. 석달 개원시한(3월 4일)이 지났는데도 병원이 당최 문을 열 기미가 없어서다. 보건복지부는 "최종 판단은 제주도의 몫"이라며 손을 놓고 있다.


한마디로 표류다. 녹지병원은 국내 투자개방형병원, 곧 영리병원 1호다. 애초 씨앗은 지난 2002년 김대중정부가 뿌렸다. 이때 경제자유구역법이 만들어졌다. 이어 2006년 노무현정부에서 제주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 307조에 따라 외국인도 병원을 지을 수 있는 길이 트였다. 그로부터 9년 뒤인 2015년 녹지병원이 설립승인을 신청했고, 같은 해 12월 복지부는 승인을 내줬다. 지난해 12월엔 개설허가권을 가진 원희룡 제주지사가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녹지병원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사실상 찬밥 신세였다. 박근혜정부에서 내준 녹지병원 승인 자체를 뒤집진 않았으나 현 정부에서 영리병원은 더 이상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영리병원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녹지병원을 둘러싼 분규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우려한다. 하나는 꽉 막힌 의료혁신이다. 문재인정부는 혁신성장을 말한다. 하지만 말 따로 행동 따로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의료는 혁신의 꽃이다. 그러나 영리병원 또는 원격진료 정책에서 보듯 정부는 변화를 선도할 의지가 없다. 자칫 중국과 외교마찰도 걱정이다. 녹지병원은 중국 국영기업인 뤼디그룹이 100% 출자했다. 행정소송에 이어 손해배상소송,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상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잇따를 수 있다. 어느 소송이든 우리가 쉽게 이기리란 보장이 없다.

지난 2017년 여름 기업인들은 청와대 호프미팅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국회 통과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서비스법의 알맹이는 보건·의료다. 여기서 일자리가 많이 나온다. 자칭 '일자리정부'가 의료혁신을 외면하는 것만큼 큰 모순이 있을까. 의료는 장차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갈 유망산업이다.
의대·약대를 나온 인재들에게 더 넓은 기회를 줘야 한다. 녹지병원 개원이 무산되면 17년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갈 판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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