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칼럼]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소득 3만 달러 시대라지만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팍팍
상대적 박탈감에 행복 저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권영길 전 의원이 유행시킨 말이다. 풀버전은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다. 행복의 조건이 살림살이에 국한되는 건 아니겠지만, 살림살이가 좀 나아져야 행복한 마음도 들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살림살이=행복'이라는 등식이 전혀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아니다. 이 말은 당시 한 개그맨에 의해 패러디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뜬금없이 살림살이 운운하는 것은 선진국 기준이라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해서다. 체감률이 떨어지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진입이라는 요란한 구호에 비해 실질적 소득 증가분이 얼마 되지 않는 게 첫번째 이유다. 지난 2017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745달러였다. 3만달러 시대에 들어섰다는 지난해에는 전년에 비해 5.4% 늘어 3만1349달러를 기록했다. 소득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고 찔끔 올라서는 쉽게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기 어렵다. 맨 앞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뀐 건 맞지만 놀랄 만한 수준의 상승폭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환율에 의한 착시현상도 없지 않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난 것은 꾸준한 소득 증가도 원인이겠지만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2.7% 하락하는 원화 강세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17년에는 1달러가 평균 1130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100원이었다. 똑같은 소득을 올렸더라도 달러로 환산된 지표상 수치는 그만큼 부풀려졌을 공산이 크다. 환율에 의해 부풀어 오른 '공갈빵 효과'를 제하면 그만큼 체감률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득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살림살이가 좋아졌다거나 혹은 나빠졌다고 느끼는 건 실질적 소득 증가보다는 심리적 측면이 강하다. 소득이 제법 올랐더라도 남이 더 많이 올랐다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가령 나의 소득이 100만원 오를 때 남이 1000만원 오른다면 소득 증가분에 대한 체감률은 그만큼 떨어지게 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 불평등도가 1990년대보다 2000년대에 크게 악화됐고, 이런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니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소득 증가와 행복의 관계를 논증한 '이스털린의 역설'을 통해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창한 이 이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부자라고 모두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아무리 늘어나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의 주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복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 않는 '일정 수준의 소득'이 과연 얼마인가 하는 점인데, 이스털린의 후예인 대니얼 카너먼과 앵거스 디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인은 연소득 7만5000달러(약 8400만원·2009년 기준)까지 소득증가와 비례해 행복감을 느꼈다. 같은 방식으로 지난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은 그 기준점이 조금 더 높아 연소득 1억800만원부터 소득 관련 행복도가 감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졌다고 아우성인 이유를 알 것 같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