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불법촬영물 소지한 당신, 장난이었다고요?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1 13:26

수정 2019.03.21 13:26

[기자수첩] 불법촬영물 소지한 당신, 장난이었다고요?

"승리 카톡이 죄면, 대한민국 남성들은 다 죄인인가"
난데없는 물타기였다. 선량한 대한민국 남성들까지 순식간에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 클럽 '버닝썬' 이문호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매매가 이뤄진 것도 아니고 장난친 것만으로 이렇게…"라며 말끝을 흐렸다고 했다. 승리도 "친구들끼리 허세부린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장난처럼 취급했다. 이 쯤에서 궁금해졌다. 이들이 말하는 '장난'은 과연 어디까지 범죄로 볼 수 있을까.

이번 사태로 드러난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행위는 결코 장난이었다고 볼 수 없다. 본인들은 장난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피해자에겐 인생이 달린 문제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모두에게 이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한 번 유출된 영상은 걷잡을 수 없이 퍼지지만, 가해자가 제대로된 처벌을 받는 비율은 턱없이 낮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에서 9월 성폭력특별법 제14조(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구속된 비율은 2.6%에 그쳤다.

최근 여성단체들 사이에선 '불법촬영물 소지죄'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피해는 그 어떤 범죄만큼이나 극심하지만 가해자를 잡기도, 처벌하기도 어렵다면 범죄를 방관한 점에 대해서도 죄를 묻자는 이야기다.

일리가 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의원이었던 지난해 6월 "최근 불법촬영문제가 심각해지는만큼 국회차원에서도 불법촬영물 소지죄 등 다양한 대책을 모색해 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다운로드 받은 구체적인 행위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법 조항을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단체 관계자도 "불법촬영물인 것을 알고서도 소지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조항을 만든다면 유통·소비 총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 음란물은 가지고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하다. 아동음란물 소지와 유통은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와 착취, 인신매매 등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법촬영물도 다르다고 볼 수 없다. "단순 장난이었다"고 치부해버리는 가해자들이 존재하는 한 장난은 장난을 불러 끝없는 범죄를 양산한다.

이번 사태로 카톡방에서 공공연히, 또 문제의식 없이 이뤄지는 불법촬영물 공유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도마위에 올랐다. 이는 특정 카톡방에, 특정 성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장난도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할 때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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