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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부탁에 몰락한 은행원..남은건 100억 빚과 전과자 낙인뿐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4 10:05

수정 2019.03.25 08:04

클릭 이 사건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피고는 원고에게 105억6899만원을 지급하라.“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24부(김경준 부장판사)는 하나은행이 김모씨(60)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무려 100억원이 넘는 배상액을 인정했다. 당사자인 김씨에게 연락이 닿지 않은 가운데 한차례의 변론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김씨는 무슨 일로 감당하지 못할 거액의 소송을 당한 걸까?
■고교 후배와의 잘못된 만남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상고 출신의 김씨는 1983년 서울신탁은행에 입사했다. 당시 5대 시중은행 중 하나로 남부러울 것 없는 직장이었다.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김씨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시작은 1991년 당시 입사 9년차, 고교 후배였던 박모씨(58)와 연을 맺으면서다. 고교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던 두 사람은 박씨가 서울신탁은행의 거래처였던 동아건설 자금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업무상 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김씨는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한 동아건설에 자금관리단으로 파견됐고, 관리단 실무총책임을 맡고 있던 박씨와 더욱 친해졌다.

후배를 너무 믿었던 걸까? 아니면 우량고객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걸까? 김씨는 10년 넘게 사업 파트너로 지내온 박씨의 꾐에 빠져 해선 안 될 선택을 하고 만다.

박씨는 2004년 주식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을 입자 이를 만회할 생각으로 회삿돈에 손대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재경팀 부장으로 자금 입출금 업무를 맡은 점을 이용해 출금신청서나 질권자 명의의 질권해지통보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2009년까지 총 1887억원을 횡령하고, 이 중 964억원을 사설도박과 해외원정도박 등으로 탕진했다.

김씨도 회사의 정기예금을 개인적으로 인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박씨의 부탁에 질권설정을 고의로 누락하는 방식으로 횡령범행을 돕는다. 수차례의 범행이 이어지자 김씨도 박씨의 횡령 범행을 눈치 챘으나 거래처 자금부장의 부탁을 거절하기 부담스러웠고 ‘만기 때 사고가 나지 않게 하겠다’는 말에 그냥 눈감아주기로 했다.

■은행원에서 100억대 빚진 전과자로
그러나 이들의 대담한 범행은 결국 덜미가 잡혔다. 항소심에서 박씨는 징역 22년 6월에 벌금 100억원, 김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010년 11월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박씨의 범행을 도왔을 뿐, 횡령으로 얻은 이익이 없다는 점이 양형에 반영됐다.

하나은행은 이들의 범행으로 약 76억원의 직접적 피해를 봤다. 또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동아건설 등과 벌인 소송 등에서 약 40억원을 추가로 사용했다.

이에 은행 측은 “김씨의 근로계약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113억여원의 손해를 입게 됐다”며 김씨를 상대로 이 돈을 물어내라고 지난해 12월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재판부는 소송비용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김씨의 불법행위와 관련됐다고 판단했다.
후배와의 잘못된 인연은 평범한 은행원을 100억원대 빚더미를 떠안게 된 전과자로 전락시켰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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