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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왕권주의 못 깬 '광화문 대통령'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4 17:10

수정 2019.03.25 00:32

[윤중로] 왕권주의 못 깬 '광화문 대통령'

'광화문 거리를 청와대 앞으로 옮기면 안되나요.'

사실상 무산된 문재인정부의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두고 생각해본 역발상이다. 청와대가 광화문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청와대 앞을 시민들이 모이는 광화문처럼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관저는 주택가에 있고, 일본 총리관저 옆에 고층빌딩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안될 일도 아니다.

사라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광화문 대통령이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보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이전비용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광화문 대통령은 그동안 한국식 정치의 큰 폐해였던 왕권주의 대통령제의 종말을 앞당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권주의 대통령제에서 생긴 부작용은 유신, 독재, 소통단절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왕권주의에선 대통령의 임기 중 탄핵되지 않는 한 사임도 쉽지 않다. 왕이 사임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구중궁궐 같은 요새의 형세다. 북악산이 병풍처럼 뒤에 드리우고 있고 앞으로는 경복궁이 가로막고 있다. 지난해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개방하기 전까지는 바리케이드로 길목까지 막아왔다.

반면 외국 정상들의 관저는 시민들의 거리에 있다. 영국 총리관저는 다우닝가 10번지 주택가에 들어서 있다. 총리관저는 대영제국의 위상과는 달리 일반 맨션 수준이다. 일본은 총리관저를 새로 신축하는 과정에서 이미 기존의 초고층빌딩이 인접해 있었지만 신축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처럼 실리를 추구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체면의식 때문에 절대로 궁궐 같은 청와대를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국민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서울 시민조차도 청와대 앞을 거닐 일이 별로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 인근에 일반 시민들의 방문을 촉진할 시설물들이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 앞 경복궁 담장만 넘으면 국립민속박물관과 어린이박물관이 있지만,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궁전 내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과 지하박물관을 조성해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가 된 루브르박물관을 참고할 만하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국빈만찬을 사상 처음으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내 한식당에 갖는 이례적인 국정행사를 가졌다. 또 청와대는 경제관료 회의를 사상 처음 코엑스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에서 열면서 화제가 됐다. 시민과 함께하는 청와대여서 좋았지만 일회성 행사에 그쳤다.

그렇다면 별마당도서관이 청와대 인근에 들어서면 어떨까. 부지도 잘 찾아보면 있다. 청와대길에서 수백미터 거리에 있는 오랜된 시립 정독도서관은 연면적만 1만3266㎡에 달한다. 서적을 보관하는 도서관 면적보다 비어 있는 공원 같은 면적이 더 넓다. 도서관인지 공원인지 헷갈릴 정도다.
주말에는 주변 북촌 관광객들의 차량이 도서관 주차장으로 몰린다.

청와대 인근에 별마당도서관이나 삐에로쑈핑 등이 들어선다는 다소 무리한 상상까지 해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왕권주의를 없앨 '광화문 대통령'의 무산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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