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그들은 39년전 5월 시신의 사진을 "귀하다"고 했다

뉴스1

입력 2019.03.26 07:31

수정 2019.03.26 07:31

국회 전방 200m에 위치한 천막 농성장 인근에 5·18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2019.3.22/뉴스1 © 뉴스1
국회 전방 200m에 위치한 천막 농성장 인근에 5·18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2019.3.22/뉴스1 © 뉴스1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지만원씨가 '5.18 북한군 개입 여부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2019.2.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지만원씨가 '5.18 북한군 개입 여부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2019.2.8/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부상자 어머니들이 지난 1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5·18진상규명위원회 조사위원 위촉과 관련해 나경원 원내대표와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19.1.1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부상자 어머니들이 지난 1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 앞에서 5·18진상규명위원회 조사위원 위촉과 관련해 나경원 원내대표와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2019.1.1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5·18 망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5·18 단체 회원이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걸고 있다. 2019.3.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5·18 망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5·18 단체 회원이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 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걸고 있다. 2019.3.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국회 앞에 5·18 이후의 민주화 역사가 기록된 대형 펼침막이 세워져 있다. 2019.3.22/뉴스1 © 뉴스1
국회 앞에 5·18 이후의 민주화 역사가 기록된 대형 펼침막이 세워져 있다. 2019.3.22/뉴스1 © 뉴스1

국회 앞 '천막 사진전'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사진이 놓인 높이 1m 남짓의 삼각대는 여의도의 차디찬 칼바람에 쉽게 엎어지곤 했다. 그럴 때면 5·18항쟁 구속자동지회 경기도 지부장인 김현준씨(남·58)는 황급히 달려가 땅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워 삼각대 위에 올려놨다. 눈과 비바람에 씻긴 사진은 군데군데 헤지고 귀퉁이가 부서졌다.

사진은 참혹한 장면을 담고 있었다.

얼굴에 시퍼런 피멍이 맺히고 핏자국이 남아있는 시신의 사진이었다. 첫 눈에 봤을 때 사람의 형체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부서진 이의 사진도 있었다. 남녀의 구분도 없었다. 연령대도 10대에서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5·18 당시 희생자들의 사진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지난 2월 8일 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 등 폄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자 김씨가 속한 모임을 포함해 5·18 단체들은 같은 달 11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 이 사진을 전시했다.

국회로부터 약 200m 앞 천막 농성장을 세운 곳에도 소규모 사진전을 열었다. 시민들에게 당시 상황을 알린다는 취지였다.

5·18 때 자식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이 사진을 두고 "귀한 것"이라고 불렀다. '내 새끼'처럼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이들의 사진. 그래서 내 자식처럼 더 없이 귀했다. 사진 위로 눈이 쌓이면 나이 80대의 오월 어머니는 장갑도 끼지 않고 맨 손으로 눈을 쓸어냈다.

정작 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국회 정문에 세워진 삼각대는 결국 바람에 못 이겨 2월말쯤 치워졌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나자 국회 앞을 지키는 전경들은 이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천막 농성장 인근 행인 20여명에게 '이 근처 5·18 사진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지만 하나같이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젊은 층 사이에선 가수 승리의 성접대 의혹이 단연 화젯거리였다. 국회 앞에서 만난 홍모씨(여·26)는 "회사에서 승리 관련 얘기는 많이 하지만 5·18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 5·18에 대한 생각은 사뭇 달랐다. 경북 청송군이 고향이라는 서상철씨(남·55)는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진실이 더 명확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씨(여·46)는 "정치인들이 광주 5·18을 두고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특수한 일 인양 얘기하며 지역을 갈라치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1980년 5월 18일 '그라운드 제로'가 되어버린 광주의 사람들은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근례씨(80)는 아직도 자식이 죽은 그 날의 시간과 공간 속에 갇혀 사는 듯 했다. 공수부대가 광주를 휩쓸고 지나간 1980년 5월 27일, 이씨는 전남도청 본관 앞에서 이미 숨이 떠난 아들 권호영씨(당시 18세)를 봤다.

"우리 애기가 아니어요."

이씨는 아들의 시신을 목전에 두고 손사래를 쳤다. 머리통이 부서져 눈코입이 흩어지고 속옷조차 벗겨진 알몸의 시신이 거적에 덮여 있었다. 아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약에 의지해 살면서 행여나 살아있을 아들을 찾아 헤맸다. 그 시신이 아들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안 때는 22년이 지난 뒤였다.

'친자 확률 99.99%'

이씨는 유전자 검사 결과서를 받아들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거듭 부정했지만 호영씨 시신이 틀림없이 맞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국회 앞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 사진이 있잖소. 그게 내 애기요. 아직도 내 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어린 아들이 생각나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험하게 죽은 사람이 내 자식은 아닐 거라는 못된 생각이 들어…."

숨이 가빠져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이씨가 진정하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까스로 숨이 트이면서 울음이 입 밖으로 쏟아졌다.

이씨는 지난 1월 14일 국회 본관 2층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실을 찾았다. 한국당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 추천을 미루면서 법에 따른 진상규명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조사위 활동의 근거가 되는 5·18 특별법이 시행된 지 4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씨는 부끄러움도 잊고 문 밖에 주저앉아 울음을 게워냈다. 수일째 단식해 텅 빈 뱃속으로부터 "내 새끼 살려내라"는 탄식이 메마른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날 이씨는 나 원내대표를 만나지 못했다. 대답도 얻지 못했다.

5·18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이해관계에 따라 두 쪽으로 갈렸다.

한국당은 오월 어머니들이 국회를 항의 방문한 1월14일 3명의 추천 위원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2명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재추천 요구를 받았다. 그 뒤 한국당은 조사위원 재추천을 거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한국당을 향해 조사위원을 재추천하라며 촉구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5·18 망언 논란을 빚은 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에 대한 당내 징계는 확정되지 않았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차원의 징계 논의도 사실상 중단됐다. 윤리특위 자문기구인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한국당 추천 자문위원 3명이 최근 일괄 사퇴한다고 밝히면서다.

이 가운데 김순례 의원은 지난 2·27 전당대회에서 한국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5·18 천막에는 침묵이 흘렀다. 현장상황을 총괄하는 김씨에겐 익숙한 침묵이었다.

천막 앞에선 차도 사람도 빠르게 움직였다. 일부는 저마다의 고민거리를 안은 채 국회 안으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어쩔 땐 모처럼 천막을 찾아온 낯선 사람이 "사진으로 '시체팔이' 하지 말라"는 경고(?)를 던지고 갔다. 얼마 전엔 5·18 망언 의원의 징계를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날카롭게 찢겨져 있었다. 김씨는 이마저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는 5·18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고 왜곡 발언자가 처벌받을 때까지 천막을 지키겠다고 했다.


국회 정문 앞에는 삼각대 대신 5·18 관련 설명을 담은 대형 펼침막을 세웠다.

"사람들이 5·18을 잘 모르는 건 당연하죠. 앞으로는 서울역이나 홍대같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도 사진전을 열려고 해요. 5·18을 알려야 하니까요."

그는 1980년 5월 18일 '그라운드 제로'를 향해 역주행하고 있었다.
5·18 왜곡 논란으로 시끌벅적했던 2월을 뒤로 한 채 국회는 어느덧 5월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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