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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조양호 내쫓은 국민연금, 부작용 생각해 봤나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7 17:05

수정 2019.03.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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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수익률 반성은커녕 재벌때리기 정치에 한눈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70)이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었다. 2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연임안은 64.1%의 찬성표를 얻었으나 정관이 정한 3분의 2(66.66%) 이상 기준에 모자랐다. 반대표는 35.9%였다. 2대 주주(지분율 11.56%)인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다. 연임안 부결을 국민연금이 주도한 셈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공언했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도 본격 시행했다. 여태껏 국민연금은 종이호랑이 소리를 들었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뜻을 관철한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엔 국민연금이 제대로 한 건 올렸다. 유명한 재벌 총수를 주총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지금 샴페인을 터뜨릴 때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조양호 축출'이 가져올 부작용을 깊이 고민할 때다. 앞으로 재벌 총수들은 만사를 제쳐놓고 경영권 방어에 전력을 쏟을 게 틀림없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거나, 배당을 부쩍 늘려 주주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 등이 있다. 어느 경우이든 회사의 미래 생존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의 소극적 경영은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낮추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에 짙게 물든 정치색은 더 큰 문제다. 우리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간섭하기 전에 제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현재 최상위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정치권 낙하산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정치적 편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근혜정부가 그 증거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국민연금 지배구조는 그냥 둔 채 경영간섭만 강화했다.

지금 국민연금은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관세청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이게 과연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이 할 일인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재벌 총수를 혼내면 연금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국민연금은 지난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성문을 써도 모자랄 판에 국민연금이 왜 수익과 무관한 일에 눈을 돌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국내 대기업 가운데 국민연금 눈치를 보지 않는 곳이 없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109조원(2018년 말 기준)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연못 속 고래'다. 이게 문제다. 힘이 넘치니까 자꾸 힘자랑을 하고 싶어진다. 정권은 슈퍼갑 국민연금을 앞세워 재벌을 통제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국민연금이 참 '국민' 연금으로 거듭나려면 국내 투자를 줄이고 해외로 더 나가야 한다.
조양호 회장 일가의 비리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징벌은 사법당국에 맡기는 게 순리다.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주먹을 휘두르면 국민연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치르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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