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판사는 판결로 평가받아야 한다


요즘처럼 판사 하기 힘든 시절이 있었을까 싶다. 판사는 법률에 규정된 사유가 없으면 재판을 거부하지 못한다. 좋든 싫든 맡겨진 분쟁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패소한 측의 원망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판결을 선고하게 되면 심지어 신상까지 전부 털릴 각오를 해야 한다.

최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영장기각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구속사유가 있는지 여부와 영장실질심사에서 어디까지 판단해야 하는지가 쟁점이다. 여전히 판결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지만,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1심 판결 당시 논란보다는 판결에 대한 비판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감정적이 아니라 법리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판사는 신의 영역인 세상사에 대한 심판 권한을 유일하게 위임받은 고귀한 직업을 가졌지만, 결코 신은 아니다. 인간인지라 가치관이나 경험 등 다양한 원인 때문에 판사마다 판결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일관성이 있어야 판결을 신뢰하게 된다. 세상에 똑같은 사건은 없겠지만, 등장인물만 다를 뿐 유형별로 같은 내용의 사건은 많이 있다. 이런 경우 결론이 동일해야 신뢰가 생긴다.

흔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판사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판결이 돼야 한다. 그가 살면서 어떤 활동을 했고, 누구와 교류했느냐보다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판사로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같은 내용의 사안에 일관되게 판결해 왔는지 여부와 당사자나 변호사가 누구인지와 무관하게 동일한 결론을 내고 있었는지가 우선 고려돼야 한다.

변호사회는 매년 법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2008년 서울지방변호사에서 시작한 법관평가가 지금은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14개 지방변호사회에서 모두 실시되고 있다. 시작은 법정에서 판사의 막말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변호사회의 지속적 평가와 법원의 자체 노력의 결과 현재 법정에서 막말은 현저하게 줄었다. 그러나 이런 법관평가는 초보 수준의 평가다.

제대로 된 법관평가는 판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서 의사를 표시하는 판결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하급심 판결을 공개해야 한다. 하급심 판결이 전부 공개되면 특정한 판사가 같은 내용의 사건에 대해 어떤 피고인에게는 실형을 선고하고, 어떤 피고인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는지가 파악된다.

같은 내용의 사건에 대해 다른 결론의 판결을 하면서 판결문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떤 변호사가 선임됐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전관이나 친분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한 사건에 대해 다른 경우보다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다면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하다. 이처럼 판결문 전면 공개는 전관예우의 폐해를 실효성 있게 막을 수 있다. 또한 모든 판결이 공개되고 평가받게 된다면 판사로서는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그 내용은 물론이고 글자 한 자까지 신경쓸 수밖에 없다. 당사자인 국민은 심혈을 기울여 쓴 판결문을 보고 어떤 부분을 불복할지 예측이 가능해 불필요한 상소를 막을 수 있다.


하급심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는 경우 개인정보 처리 때문에 비용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전관예우를 막고 불필요한 상소를 줄이는 이익보다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 판결문 작성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문제일 뿐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