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준영 손가락 질하며 선 긋지만…당신의 '성'은 괜찮습니까

뉴스1

입력 2019.03.30 07:00

수정 2019.03.30 07:00

이성과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 /뉴스1 DB © News1 이재명 기자
이성과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 /뉴스1 DB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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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동영상', 여성 연예인 이름 오르내리며 '2차 가해'
왜곡된 성인식에서 비롯…법 개정 등 사회 분위기 환기 시급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촬영한 영상물을 유포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를 받는 가수 정준영씨(30) 사건은 연일 뜨거운 이슈다. 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를 받던 정씨는 지난 29일 송치돼 검찰로 넘겨졌다.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촉발된 '불법 촬영'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정씨에 대한 비판 여론 등 관심이 너무 커져 다른 중요한 이슈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을 정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해당 사건에 대한 '몹쓸 호기심'도 함께한다. 해당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한동안 주요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1위는 '정준영 동영상'이었다.
이미 불법촬영물이 퍼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메신저 등에서는 동영상을 공유하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차 피해'도 뒤따랐다. 다수의 여성 연예인 이름이 오르내렸고, 포털사이트에서 정준영의 연관검색어로 묶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불법 촬영 사진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사진이 유명 연예인의 이름과 함께 거론되며 퍼져나가기도 했다.

윤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이를 두고 "정준영을 손가락질 하면서도 같은 성범죄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 지적한다. 윤 교수는 "정준영을 비난하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일련의 현상들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한 2000년대 이후 불법촬영물을 찍고 유포하는 범죄와 그로 인한 피해자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인식과 반응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혹여 유명인이 얽혀있기라도 하면 해당 동영상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웹하드와 P2P 등에서는 '리벤지 포르노'를 비롯해 숱하게 많은 불법 촬영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준영 사건' 이후 불거진 대학교수들의 잇따른 망언은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의 모 교수는 "정준영은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라고 발언했고, 폴리텍대학 대전캠퍼스의 모 교수는 "'정준영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면 남학생들에게 보여줬을 것이고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반적으로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영향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윤지영 교수는 "도심 번화가만 지나가도 '노래방 도우미' '안마방' 등의 간판을 버젓이 내건 업소를 손쉽게 볼 수 있다"면서 "여성은 언제든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과 메시지가 끊임없이 주지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정준영 사건을 얘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 거냐' '(여성을 유혹한) 비법이 뭐냐'는 등의 내용도 쉽게 볼 수 있다. 결국 여성을 전리품처럼 소비해 과시한 하는 모양새"라며 "전반적으로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혀 있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의 경우 너무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고, 이에 대해 누군가를 지적하거나 반대로 지적받지 않은 채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 자체를 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촬영물과 관련한 처벌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불법 촬영과 유포 뿐 아니라 단순히 시청하는 행위 역시 가해 행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법령을 재정비해야한다는 것이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시청하는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윤 교수는 "이미 다운을 받아 불법촬영물을 시청하고 품평한 자체로 피해자에게는 큰 고통"이라면서 "더구나 다운로드를 받았다면 현재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재유포가 가능하고, P2P의 경우 다운받는 동시에 업로더가 되는 시스템이기에 사실상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곽 교수 역시 "자체적으로 자정이 되는 양상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오히려 점차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개정해서라도 처벌을 좀 더 강화해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 개정 만으로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곽 교수는 "상대를 배려하는 인성, 성품, 가치관 등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일련의 사태는 비단 인터넷과 성에 국한된 문제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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