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무방비 노출된 기업 경영권] 스튜어드십코드는 시작… 상법 개정땐 '제2 대한항공' 또 나와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31 17:30

수정 2019.03.31 17:30

(上) 흔들리는 기업 경영권
고배당·과도한 경영간섭 일삼는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
5년새 두 배로 급증했는데…
국회선 경영권 개입 수단될 다중대표 소송제 등 추진
기업들은 미래 신사업은 커녕..경영권 방어에도 벅찬 상황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재계의 잠언이 올해 주주총회 시즌 이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단기이익을 좇아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압박 공세와 함께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까지 겹치면서 경영권 방어는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하지만 올해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분석이다. 1년 뒤에 열리는 내년 주주총회는 그야말로 전쟁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주주 경영권을 옥죄는 상법개정안이 올해 국회에서 통과되면 외부세력의 이사회 진입 발판이 마련되는 등 기업 경영권은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다.


자사주 취득과 같은 고비용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는 진화하는 투기자본에 대응조차 버겁다. 이처럼 외부위협으로부터 기업을 지킬 수 있는 방패는 낡고 빈약한 반면, 공격해 오는 창은 점점 정교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미래 먹거리 확보에 총력전을 펼쳐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경영권 지키기에 급급한 상황이 된 것이다.

기업들이 겪고 있는 이 같은 도전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전반에 위기감을 고조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외부세력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는 기업 경영권에 대해 3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무방비 노출된 기업 경영권] 스튜어드십코드는 시작… 상법 개정땐 '제2 대한항공' 또 나와

■경영권 위협요소 확대일로

3월 31일 재계에선 기업의 명운이 걸린 경영권이 전방위로 위협받는 급격한 환경변화에 일제히 우려를 쏟아냈다. 국적을 가릴 것 없이 주주이익 극대화를 내걸고 고배당과 과도한 경영간섭을 시도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과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스튜어드십코드의 공격적인 행보부터 큰 부담이다. 더구나 투기자본이 경영권 개입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상법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내년 주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투기자본들이 난립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2013년 상반기 275개에서 지난해 상반기 524개로 5년 새 2배로 급증했다. 한국도 그들의 주무대가 되고 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만 현대차, 현대모비스는 물론 한진칼, 대한항공, 현대홈쇼핑, 한솔홀딩스, 무학 등이 공격대상이 됐다. 배당으로 지난해 순이익의 3배와 경쟁사 임원을 사외이사로 제안하는 등 상식 밖의 요구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내년 주총에서는 투기자본의 횡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가 입법추진 중인 상법개정안이 현실화되면 경영권 개입의 물꼬를 터주기 때문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주주가 출자기준 50% 이상 자회사의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모회사 실적악화 등에 대해 자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어 자칫 소송대란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현재 상장된 90여개 지주사 가운데 70% 이상이 대상이 된다. 특히 투기자본이 모회사 지분 취득 후 소송을 빌미로 자회사 경영개입에 나설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도입한 국가는 일본뿐이다.

집중투표제는 2인 이상 이사 선출 시 지분 3% 이상 주주들이 일부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통상적으로 '1주1표'이지만, 집중투표제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주로 3표를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이사의 수만큼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외부세력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후보로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어 엘리엇도 현대차에 요구한 제도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오래전 폐지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주총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출 시 의결권을 3%로 제한, 다른 사내·외 이사들과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대주주와 국민연금 등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은 자회사 펀드 등을 통해 3% 이하로 지분쪼개기와 연합전선 구축이 가능해 표 대결에서 뭉칠 수가 있다. 이 역시 투기자본들이 이사회에 입성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스튜어드십코드' 공포 고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도 경영권 수성에 변수로 급부상했다. 단순히 기업의 대표이사 연임을 부결시켜서가 아니다. 총수 일가의 일탈 등 잘잘못을 떠나 독립성 부재와 모호한 스튜어드십코드 발동기준으로 경영개입을 실행으로 옮겨서다.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과도한 경영간섭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발동 가이드라인은 불리한 배당정책, 방만경영, 횡령·배임 등 위법행위,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하락,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경우 등이다. 대한항공은 딱 들어맞는 조건이 없다. 굳이 꼽자면 횡령·배임 등 위법행위와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하락 정도다. 그러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횡령·배임은 확정된 게 아니라 혐의단계다. 현재 재판 중으로 1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로 기운 것은 객관적 증거가 있을 땐 기소 단계라도 반대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려서다. 하지만 객관적 증거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지, 국민연금이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이 일감 몰아주기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H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고 기권한 것도 맥락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하락'은 예상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사안이다. 전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주관적 성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게 문제다. 또한 국민연금의 막대한 파급력을 감안하면 기업들엔 스튜어드십코드가 공포의 대상이다.
기금을 위탁한 자산운용사는 약 29곳으로 이 가운데 20곳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는 등 상당수가 국민연금과 방향성을 맞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신뢰를 얻고 올바르게 정착하기 위해선 독립성과 명확한 기준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관계자는 "단기적 주주가치 극대화에 매몰돼 기업가 정신은 위축되고 경영혼란이 야기되는 등 기업 성장성과 경영안정성 훼손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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