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글로벌 위기 앞에 선 한국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조짐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작년보다 무려 0.8%포인트나 낮은 2.1%까지 하향 수정하면서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의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경기침체에 선행했던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통상협상도 90일의 협상시한을 연장해가면서 조기타결을 낙관하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경기악화 움직임은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세계 주요국가 중앙은행들도 금리인상 계획을 철회하거나 양적축소 계획을 중단하고 있다.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하원의 투표 결과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노딜브렉시트의 가능성을 점점 높이고 있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텨내었던 중국마저도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주요국의 주가가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금리나 주가의 단기적인 변동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주요 경제지표들은 글로벌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외의존도가 87%에 육박하고, 선진국에 버금갈 정도로 금융시장 개방도가 높은 한국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1월에 잠시 개선되었던 생산, 소비, 투자는 2월부터 완연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작년 한국 경제성장률의 약 67%를 차지했던 수출도 3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고, 특히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도 지난 1월 전년동기 대비 23.3%나 감소했다. 이러한 경제지표들의 변화는 한국 경제가 위기수준에 접어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미국발 통상압박도 걱정스럽다. 지난 3월 20일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서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수입을 규제한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이제 한국 자동차가 무역확장법 232조의 예외로 인정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그렇다고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들처럼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쓰기도 쉽지 않다. 자칫 미국 연준이 금리인하를 단행한다고 한국이 금리를 인하했다가는 경기회복은커녕 경기침체기에 나타나는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심각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경기하강 국면에서 금리를 인상하는 일은 더욱 부담스럽다.

과거 외환위기를 경험한 만큼 경제부처들과 한국은행은 이러한 상황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그러한 대비는 단기적인 방안에 불과하다. 오히려 청와대와 정부의 주된 관심은 최저임금, 재벌개혁, 공유경제, 탄력근로제 등과 같은 국내 문제와 논란에 집중된 듯하다. 그러한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거나 논의가 필요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가 소모적이거나 이해집단들의 소위 지대추구적(rent-seeking) 주장만이 되풀이된다면, 국내 문제인 만큼 이젠 정말 정책결정권자의 합리적인 결단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글로벌 경기 둔화는 국내 문제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7월에서 10월 말까지 기아자동차의 처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던 때에 우리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정책당국자의 말을 믿었다.
국민기업 기아자동차를 살리자는 정치권의 외침은 정의로워 보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동남아를 휩쓸고 한국에 덮친 외환위기를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고, 기아자동차는 결국 재벌기업에 인수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자주 틀리기를 기원한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