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연극으로 만나는 갈릴레이, 햄릿, 노라..시대를 뛰어넘는 울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15 16:55

수정 2019.04.15 16:57

고전이여, 영원하라
"극중 추기경과 학자들이 애써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이 지금 우리 사회와 너무 닮아 보였다."('갈릴레이의 생애' 이성열 연출)

"19세기 말 노라가 던진 정치 사회적 질문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 여전히 유효하다."('인형의 집 Part2' 김민정 연출)

"400년 전에 영국에서 발표된 햄릿, 그 햄릿을 지금 서울에서 다시 공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고민에서 출발했다."('함익' 김은성 극작가)

고전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4월 연극계에 서양 연극사를 대표하는 극작가와 그들이 탄생시킨 캐릭터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자전적 성찰이 담긴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와 '페미니즘의 아이콘' 노라를 창조한 '인형의 집' 속편에 해당되는 미국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인형의 집 Part2'가 공연 중이다.


영원한 고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로 한 '함익'은 지난 12일부터 재연에 들어갔다.

■갈릴레이의 생애, 교과서를 벗어난 근대과학의 아버지… 170분의 토론과 논쟁 끝에 마주하는 진실

연극으로 만나는 갈릴레이, 햄릿, 노라..시대를 뛰어넘는 울림

여러 명의 배우들이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오, 피가로~' 록밴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속 노래를 부른다. 브레히트 연극의 특징인 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이 인상적인 '갈릴레이의 생애'는 17세기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망원경을 처음 접하게 된 40대 중반 이후부터 약 30년간의 삶을 그린다. 갈릴레이 하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자로 기억된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를 통해 교과서에서 벗어난 갈릴레이는 더욱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사교적이고 미식가인데다 계산에도 밝은 그는, 풍문으로 들은 망원경을 마치 자신이 발명한 것처럼 뚝딱 만들어 권력자에게 들이밀 정도로 뻔뻔한 구석이 있다. 동시에 페스트가 창궐하는데도진원지에 있는 연구실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학문적 열정이 강하다. 직접 개조한 망원경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는 지동설을 주장하나,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17세기 당시 지동설은 중세 교회에 의해 '이단적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천재 과학자는 급기야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권력에 굴복한다. 대신 남은 생애 필생의 저술을 완성하면서 '근대과학의 아버지'로서 시대적 임무를 완수한다.

'갈릴레이의 생애'는 러닝타임이 170분에 육박하고 극 전반에 걸쳐 토론과 논쟁이 이어지나, 마치 우주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원형의 무대에서 갈릴레이란 인물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브레히트가 갈릴레이란 인물에 주목한 배경도 흥미롭다. 종교재판을 받고 귀가하는 갈릴레이의 모습부터 갈릴레이의 제자가 국경을 넘는 마지막 장면까지는 갈릴레이의 전기적 사실과 무관하며, 전적으로 창작의 산물이다. 국립극단의 이성열 예술감독은 갈릴레이를 "낡은 것과 새것의 경계에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선구자"로 바라봤다. 진실이 형체를 드러내기까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 지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 우리는 어느 좌표에 있는지 되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인형의 집 Part 2 , 집 나간지 15년만에 돌아온 노라, 현대의 여성들에게 질문을 던지다
연극으로 만나는 갈릴레이, 햄릿, 노라..시대를 뛰어넘는 울림


'인형의 집 Part2'는 노라가 집 나간 지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야기를 그린다. 무려 140년 전인 1879년 덴마크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인형의 집'은 당시 사회가 요구한 역할에 갇혀 살던 노라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나가는 것으로 막을 내려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19세기 노라는 여전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앞서간다. 김민정 연출도 "역사가 숨 막힐 정도로 더디게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말 노라가 던진 정치사회적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인형의 집 Part'는 요즘 말로 '걸크러시'한 노라를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갑다. 특히 마지막 무렵, 노라와 남편이 진심을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연극 속 지적논쟁은 평이하다. 논쟁이라기보다는, 노라가 집을 떠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궁금증이 해소되는 정도에 머문다. 28일까지 LG아트센터.

■함익, 21세기 여자 햄릿의 고민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으로 만나는 갈릴레이, 햄릿, 노라..시대를 뛰어넘는 울림


'함익'은 '햄릿'에서 비롯됐지만 전혀 다른 플롯에서 햄릿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 햄릿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누구나 다 아는 햄릿의 대사를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재해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21세기 재벌가로 무대를 옮겨 햄릿처럼 복수심을 품고 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한 연극과 여교수의 복잡한 내면이 자기 분신과의 대화를 통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또 연극과 학생들이 준비하는 연극 '햄릿'을 통해 고전 속 햄릿과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의 거리는 한결 좁혀진다.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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