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원리주의라는 시조새의 부활


요즘 오래전에 읽었던 원리주의(principlism) 또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위험성을 언급했던 글이 자꾸 생각난다. 그 글은 종교 사조에서의 원리주의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원리'란 인간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그것은 문자로 된 경전일 수도 있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가르침일 수도 있다. 그런데 원리에 예외란 없다. 목숨을 걸고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이 원리를 거스르는 모든 대상은 이단이며 이 세상에서 소멸시켜야 할 적(敵)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신의 이름을 빌리면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된다. 실제 인류 역사에서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대부분의 종교적 폭력과 테러는 이 원리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리주의는 항상 작동하지 않는다. 한 사회가 외부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사회의 생산력이 급감해 경제적으로 곤궁해질 때 원리주의는 전염병처럼 퍼진다. 정치 사조에서 그것에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이다. 삶이 어려울수록 사회는 절대적으로 의지할 무엇인가를 찾게 되고 역시 원리주의가 작동된다. 파시즘이 기승을 부렸던 국가들에서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그러한 모습은 쉽게 발견될 수 있다. '신의 뜻'이라는 말 대신 '사회의 대의'를 대입하면 그것이 바로 전체주의이다. '신의 뜻'에 반하는 개인의 자유와 사상은 존재할 수 없다. 동일한 논리로 '사회의 대의'에 반하는 개인의 자유와 사상은 박멸돼야 하는 것이다.

경제 사조에서도 원리주의가 있다. 바로 극단적 시장주의와 사회주의이다. 극단적 시장주의의 핵심은 무정부이다. 그들의 경전은 오로지 시장이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신이 관장한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시장에서 해결된다. 따라서 정부는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는 합법적 조폭이고 세금은 약탈이다. 그들의 경제 모형에서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 바다에 버리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은 오직 치안과 국방에만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극단적 사회주의에서는 시장이란 경제·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래서 약자의 지지를 받는 사회주의 정치 권력이 스스로 신이 되어 불평등과 불공정을 없애야 한다고 믿는다. 경제사의 흐름을 보면 이 두 극단적 원리주의가 온전히 세상을 지배했던 적은 드물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때로는 시장주의가 때로는 사회주의가 상대방보다 더 커졌던 적은 있지만, 그것도 완전하게 상대방을 압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유는 둘 다 다양하고 복잡한 경제·사회적 문제에 제대로 된 솔루션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둘 다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둘 다 심각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교과서의 사진이나 박물관의 화석에서만 보아왔던 경제 원리주의라는 시조새들이 언뜻 보인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맹렬히 비난하고 모든 경제문제의 원인을 다른 한쪽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양극단의 두 사상은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기에 언제나 서로를 물어뜯어 왔지만, 최근처럼 그들의 다투는 목소리가 세상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적은 없었다. 설마 이들이 우리의 하늘을 지배하겠냐마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가 이들의 잠을 깨우고 불러낸 것 같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경제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