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칼럼]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좋은뜻으로 펼친 소주성 
결과적으로 실패작 판명
정책은 성과로 평가받아


선한 의지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걸 지켜보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경우가 그렇게 드물지 않다는 사실은 더욱 곤혹스럽다.

역사학자 이정철의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너머북스)가 출간된 것은 박근혜정부가 국정농단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지난 2016년 말이다. 광화문에선 연일 촛불집회가 열리고 정치권에선 탄핵 논의가 한참 무르익던 시절이다. 눈길을 확 끄는 제목 때문에 책을 곧바로 주문했지만, 200자 원고지 2000장 분량의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책은 조선 선조 연간에 당쟁이 격화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선조 8년(1575년)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선조 23년(1590년)까지가 돋보기를 들이댄 시기다. 저자는 이 15년간 일어난 일들을 사건별로 재구성하면서 '정의로운' 사림(士林)이 현실정치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핀다. "선한 의도나 윤리가 정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이 두툼한 책을 쓴 게 아닌가 싶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번 책이 던진 화두는 문재인정부의 이념과 각종 정책을 들여다보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을 듯하다. 선한 의지로 시작했지만 나쁜 결과를 초래한 사례가 발에 치일 정도로 차고 넘쳐서다.

문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만 해도 그렇다. 임금을 올려 소득을 높이면 기업 투자 및 생산이 확대되고 소비도 늘어나 경제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이 소주성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맨앞에 내세운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하지만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처음의 목표가 이뤄졌나. 정책 담당자들은 당초 최저임금 상승이 소득 증가→소비 증가→생산 증가→성장률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는 수치가 증명한다. 지난 2월 한국경제학회가 내놓은 '신정부 거시경제 성과 실증평가'에 따르면 소주성에 대한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고용, 소비, 투자, 생산성 등 5가지 지표를 문정부 집권 이전과 이후로 나눠 살펴봤더니 고용(-2.07%P), 투자(-5.14%P), 생산성(-1.14%P) 등 4개 지표는 나빠지고 소비(0.46%P)만 유일하게 플러스 효과를 봤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수산업 생산증가로 이어질 정도는 되지 못했다는 게 학회의 판단이다.

선악 개념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경우도 없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탈원전과 부동산 정책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옳다'는 강한 도덕적 확신이 깔려 있다. 이러다보니 원전과 부동산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거대 악이 돼 버렸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차히 따르지 않는 오만도 부리게 마련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에너지 공기업이 거액의 적자를 기록해도, 각종 규제정책으로 부동산시장에 경착륙 경고음이 울려도 궤도 수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강사법도 그럴 공산이 크다. 강사법은 열악한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선한 목적에 따라 제정된 법이다.
한데 좋은 뜻으로 만들어진 이 법 때문에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지난 15일 "강사 대량해고 사태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라"며 교육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제아무리 선한 의지였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선(善)이 아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