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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北, 믿었던 對中무역마저 급감… "자력갱생" 절박한 외침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1 16:47

수정 2019.04.21 16:47

김성원 산업·경제 선임기자 
대북제재로 경제 위기..코너 몰리는 북한
김정은, 잇따라 경제발전 강조..작년 中과 교역서 사상최대 적자..광물 수출 막혀 시계 무브먼트가 1위
최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대표라는 새 호칭을 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건설을 부쩍 강조하고 나섰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본격화된 지난해 대외무역을 90% 이상 의존하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이전에 비해 군부대 방문보다 민생과 관련된 현지지도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주목된다. 실제로 그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경제발전보다 절박한 임무는 없다"면서 경제문제 해결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김정은도 북한 통제의 한계점을 느끼고 있다"며 "향후 북한 경제에서 군수공업의 비중이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정작 북한이 원하는 것은 중국이나 베트남 수준의 개혁·개방이 아니라 단순히 외국인 투자와 외화 유치를 통한 '김정은식 성장'에 국한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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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 위기론 vs 유지론

21일 정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민관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은 북한의 수출입을 직·간접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후 2018년부터는 제재가 본격 이행되면서 북한의 대중 무역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하는 등 북한 경제가 갈수록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수입 감소폭이 예상보다 작고 시장물가와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북한 경제가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버티기(muddling-through)를 지속하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가 양립한다.

유엔은 2016~17년 2년에 걸쳐 5개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북한의 대외무역에 단계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으며 북·미 양 측은 비핵화 범위와 절차, 제재완화를 두고 대립 중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 경제·핵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경제 건설 총집중 노선으로 정책변경을 시도하고 있으나 미국은 제재가 북한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협상에 활용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간한 '2018년 북·중 무역 평가와 2019년 전망' 보고서를 보면 경제제재의 영향으로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은 대폭 축소됐으며 대중 수입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대중 수출은 2억900만달러로 전년도 16억5000만달러에 비해 87.3% 급감했다. 대중 수입은 22억1800만달러로 전년도 33억3000만달러 대비 33.4% 줄었다.

특히 이 기간 대중 상품무역수지 적자는 20억900만달러로 전년도 16억6000만달러 대비 20.0%나 악화됐다. 이 같은 적자 폭은 2010~16년 평균 적자 6억7000만달러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의 2018년 국내총생산(GDP)이 167억8000만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2017~18년 누적된 상품무역수지 적자인 약 36억8000만달러는 한해 GDP의 20%를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개별 수·출입 품목에서도 크게 달라졌는데, 수출에서는 다양한 임가공 품목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수입에서는 식료품이 약진한 반면 자본재 수입은 급감했다. 대중 수출 1위 품목은 휴대용 시계 무브먼트, 수입 1위 품목은 대두유였으며 최대 수출지역은 지린성, 최대 수입지역은 광둥성이었다. 2017년 북한의 대중 수출 10대 품목은 무연탄·철광석 등 광물과 섬유, 수산물 등이지만 이들 품목 모두가 수출 제재대상이다. 주요 수입품 상위 10개 중 4개 품목이 식료품으로 '식료품의 수입 증가'와 '섬유제품의 수입 감소'가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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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보다 수입 감소폭 작아

북한의 대중 수출 감소폭(87.3%)에 비해 수입 감소폭(33.4%)이 작으면서 일각에서 제재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입 감소는 제재로 인한 '직접적인 효과'와 수출 감소에서 외화벌이 감소로 이어지는 '간접적인 효과'가 동시에 작용했는데, 전자는 즉각적인 감소 양상을 보였으나 후자는 제재 효과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수입제재 품목은 전년 대비 96.6% 감소한 데 비해 '비제재 품목'의 수입은 21억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8% 감소하는 데 그쳤다. '비제재 품목'의 수입이 일정 규모를 유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다.

가설 중에는 북한의 외화 보유량이 기대 이상이거나 현재까지 북한 경제가 제재를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또 잇따른 북·미 회담으로 북한 내부에서 제재가 조만간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됐으며,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이 보유한 외화를 조기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독특한 수입대금 결제방식 때문에 수입의 착시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갖는다. 북한은 상품 수입과 대금결제를 동시에 하지 않고, 물건을 먼저 반입·판매한 후에 대금을 지급하는 유통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만약 북한 당국에서 주민이 가진 외화의 공공부문 흡수를 목적으로 외화벌이를 위해 수입 확대를 지시했다면, 대금이 결제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중국 검역당국인 해관의 수입계정 통계는 증가할 수 있다. 더불어 북한의 무역회사가 이미 구축된 수출입 거래업체와 국내 유통망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상품 수입 규모를 줄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북한 당국이나 무역회사에 대금결제 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므로 대중 수입 증가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현실적으로도 북·중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대북사업가와 북한 관광객, 지난해에 한국에 입국한 체제이탈주민 모두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언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 연구원 관계자는 "장기 제재로 인한 경제 악화는 북한의 대남·대외 정책에 부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올해 북·중 무역, 작년 수준 유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2019년 올해 북한의 대중 수출은 2018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임가공 품목(휴대용 시계 무브먼트, 가발·가수염·눈썹)이나 비제재 광물자원 (텅스텐, 몰리브덴) 등을 중심으로 대중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신규품목의 생산량을 늘리거나 수출 판로를 개척하기 어려우므로 올해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일부 품목의 수출이 2017년에 비해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했지만 전체적으로 수출이 90% 가까이 감소해 북한 당국은 외화수급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북한은 상품무역 적자를 해외 노동자 파견 및 관광 확대 정책과 같은 서비스무역 확대를 통해 일부 상쇄시켜 왔으나 올 연말까지 취업비자가 만료된 북한 노동자들이 귀국하면 이마저 불가능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을 대신할 러시아와의 교역 비중을 늘려갈 수도 있다. 실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는 24~26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베트남식 개방에 거는 기대와 우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베트남식 경제개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북한의 경제 사정과 개혁 동향을 살펴보면 이미 가격자유화 등 시장경제로의 이행 조짐들은 현저하지만 외국 자본이나 기업을 불러들이는 제도화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 중국의 시장사회주의 단계에는 진입한 상태라는 평가는 많다. 가격 자유화와 분권화에 기초한 시장화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 김정은 위원장이 여러 차례 경제발전의 절박성 등을 언급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어떤 형태로든 경제개혁과 성장을 위한 추가적인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단어는 김정일 시대만 하더라도 금기시됐다. 그래도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베트남 국가주석 응우옌 푸 쫑과의 회담에서 베트남의 '도이머이'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는 의향을 전달할 정도다.
다만 이 같은 정책적 결단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진전 정도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경제개방을 위한 초기 여건에 대해 강한 사회주의 성향과 취약한 사회 토대를 들어 급진적인 개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은 만만찮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경제성장 없이 핵무기만으로 체제를 안정적으로 이끌기는 어렵다"면서도 "개방한들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저개발 동남아국가들처럼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게 현실적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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