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착한 규제는 존중돼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3 17:02

수정 2019.04.23 17:07

[특별기고] 착한 규제는 존중돼야 한다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갈 정도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고, 동네빵집이나 구멍가게가 생존경쟁에 밀려 사라진 것은 가격을 시장에 내맡긴 탓이다.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불공정한 약육강식이 심화되면 약자의 설 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넘어서 정상적 사회 시스템의 작동까지 망가트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시장의 실패라고 부른다.

정상적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나 기업 활동의 자유가 존중된다. 그 자유는 사회 시스템의 작동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 민주사회는 이러한 게임의 룰, 다시 말해 법과 규정으로 작동된다.
헌법 1조에 나오는 '민주공화국'은 여기에 더해 공공의 이익까지 존중되는 나라를 뜻한다.

그런데 그 법이나 규정조차도 약자보다는 강자의 이익을 지키는 데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수의 이익을 지키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착한 규제'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용인시는 지난 1월 오피스텔 하자 발생 시 입주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사용승인 단계에서 하자이행보증증권을 징수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같은 공동주택인데 아파트에만 적용하던 제도를 오피스텔에까지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적용하는 법규가 다르다고 차별하던 법적 미비를 찾아내 보완한 것이다.

최근 경기도가 이 제도를 우수사례로 선정해 각 시·군에서 적극 시행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건축물 하자 관련 분쟁이 발생할 때 건축 전문가가 아닌 일반 입주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보호할 용인시의 '착한 규제'를 인정한 것이다.

용인시는 이보다 앞서 아파트 경비원을 보호하는 시책들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입주자가 건축업자보다 약자라면, 아파트 경비원은 입주자에 비해 약자인데 이들을 보호할 수단이 전무했다.

이에 아파트 경비용역 계약 시 경비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잠시 쉴 곳조차 없던 이들을 위해 휴게공간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제도가 부담일 수 있는데도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적극 시행하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착한 규제'인 게 확실하다.

글로벌 경쟁 시대가 되면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기업들의 활동을 옥죄는 불합리한 규제는 푸는 게 마땅하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것도 그래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나 시민의 안전을 위한, 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착한 규제만큼은 오히려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새로 만들기까지 해야 한다.

아파트 외벽을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 대형 참사를 초래했던 것 같은 실수는 피해야 되기 때문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을 쓴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절제를 모르는 검은 하나의 폭력이다"라고 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며, 그것을 포기할 때 법치가 작동하지 않을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의 시대라지만 '착한 규제'는 존중돼야 한다는 얘기다.

백군기 용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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