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월드리포트] 노트르담, 그리고 통합과 분열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6 17:45

수정 2019.04.26 17:45

[월드리포트] 노트르담, 그리고 통합과 분열


전 세계인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지난 20일(현지시간) 파리는 다시 불길과 시커먼 연기에 휩싸였다. 20일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인 '노란 조끼'의 스물세번째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이번 시위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벌어진 대규모 시위로 주목을 받았다.

노란조끼 시위는 정부가 지난해 환경보호 명목으로 유류세를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이에 반대한 시민들이 대도시 중심 행정에서 소외된 지방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위로, 운전자가 사고를 대비해 차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형광 노란 조끼를 집회 참가자들이 입고 나온 것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노란 조끼 시위대는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후 폭력성이 짙은 시위로 자국 내에서 비난하는 여론이 커지자 폭력 시위의 수위를 낮춰왔다. 그러나 이날 '노란 조끼'의 반정부 집회는 이번에도 폭력 시위로 변질됐다.
경찰들은 물대포를 쏘았고, 시위대는 최루탄과 섬광 수류탄으로 맞섰다. 이날 파리 도심 곳곳은 불길이 치솟았다.

노란 조끼 시위대는 정부와 부유층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정부와 부유층이 화재로 피해를 입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를 위해서는 거액을 기부금으로 내놓았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이 기꺼이 내놓은 거액의 기부금은 '위선'이라며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가 오는 2024년 프랑스 올림픽 개최에 맞춰 대성당 복원을 약속한 것을 두고 이들은 지난 5개월여간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의 요구를 도외시한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한 집회참가자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큰 비극이지만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는 "노트르담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레미제라블(빈곤층)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모금과 약속에 시위대는 비판을 가한 셈이다. 정부와 재계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대체로 국가에 환란이나 국가적 사태가 벌어지면 국민이 하나되어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게 큰 흐름인 반면 이번 프랑스의 경우는 정반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비롯해 850년간 전쟁 등 세월을 이겨낸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심이자 파리의 심장으로 비유된다. 국제사회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당시 애도의 뜻을 잇달아 보내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압에 참여한 소방대원 500명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메달을 수여하는 등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도 이번 대성당 화재 복구를 통해 국민 화합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했으나 사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25일 노란 조끼 시위를 달래기 위해 대규모 감세를 포함한 개혁안을 제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TV담화를 통해 50억유로(약 6조4619억원) 규모의 지출 및 조세감면 축소를 비롯해 수령액 월 2000유로 이하 연금수령자의 연금을 물가상승률에 맞춰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방정부 분권화와 의회 내 비례대표 수 확대 및 국민투표 개최요건 완화를 제시했다. 문제는 노란 조끼 시위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다.
시위대는 지난주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장발장을 인용해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다. 대성당 화재 이후 반정부 성향이 더욱 짙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번 마크롱 정부의 제안을 얼마큼 수용할지가 관건이다.
다만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노란 조끼 시위대가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850년을 견디어낸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은 성숙한 시민의 자세로 대하길 기대해 본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글로벌콘텐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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