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암호화폐 지갑이 절실해질 날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30 17:21

수정 2019.04.30 17:21

[이구순의 느린 걸음] 암호화폐 지갑이 절실해질 날

전국민이 인터넷뱅킹을 넘어 모바일뱅킹을 쓴다고 하지만, 내가 인터넷뱅킹을 시작한 지는 5년 남짓 됐다.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이래저래 복잡한 게 더 많아 보였다. 산책 삼아 사무실 주변 은행에 후딱 다녀오면 되는 것을 굳이 복잡 떨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1년 정도 외국에 나가 살 일이 생겨 매월 생활비를 해결하려면 당장 인터넷뱅킹이 필요해졌다. 그 필요가 내 생활에 인터넷뱅킹을 끼워넣었다.

삼성페이 기능이 탑재된 갤럭시S7이 출시됐을 때 잠깐도 생각 않고 냉큼 새 스마트폰을 샀다.
다른 것 다 필요없고 삼성페이가 필요했다. 버스로 출퇴근을 하는데, 한 손에 스마트폰 다른 손에 교통카드, 노트북가방까지 들고 버스에 타다가는 손잡이를 놓쳐 넘어지기 일쑤였다. 한쪽 손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필요가 비싸디 비싼 새 스마트폰을 사게 만들었다.

생활에 새로운 습관 하나를 끼워넣는 데 나는 무척 더딘 편이다. 그러나 마냥 새로운 습관을 미룰 수 없게 하는 것이 절실함이다.

블록체인 산업과 기술을 고민하고 기사를 만들기 시작한 지 1년이 됐다. 1년 새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했고, 투자 위주의 암호화폐 산업은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있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달라진 점은 내게 블록체인 사업을 의논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에 기사를 써보겠다고 덤벼든 초짜 부장이 뭘 얼마나 안다고 사업을 의논하겠는가. 그 의논이 얼마나 진지했겠는가. 솔직히 돌아보면 1년 전만 해도 블록체인은 결국 눈먼 투자금 쉽게 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1년이 지난 지금 블록체인 산업계는 많이 진지하고 성숙해졌다. 무조건 기술 원리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기존 산업에 결합하고 사업모양새가 만들어지도록 탈중앙화를 반발짝 양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용자가 왜 암호화폐를 써야 하는지, 단순한 편리함인지, 그보다 더한 절실함을 터치해줄 수 있는지 블록체인 업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1998년 인터넷 도입 초기보다 빠른 속도로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러다 내가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고 싶을 날이 올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생긴다. 신용카드 수수료를 아낄 수 있고, 매번 인터넷 화면에 개인정보를 적어넣을 때 느끼던 찜찜함을 씻을 수 있고, 단지 정보를 입력했는데 내 지갑에 암호화폐가 쌓이는, 그 암호화폐로 커피를 사 마시는 서비스가 내 습관을 바꿔놓을 날이 1년 안에 올 것 같다. 그래주길 바란다. 더딘 내 습관을 절실함으로 깨주는 암호화폐 서비스가 나와주길 바란다.

또 그런 서비스가 나오면 정부도 불안의 습관을 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년간 산업계가 실패의 고통을 겪으면서 변화를 거듭한 뒷면에서 정부는 한결같은 불안의 시선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해왔다.
정부가 모험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산업계가 변화하고 도전하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되지 않을까 싶다.


블록포스트 1년을 지내면서 내가 암호화폐 지갑을 갖고싶어질 날. 산업계의 도전과 새로운 산업에 대한 열망에 정부가 불신의 시선을 거둬주는 날이 올해 안에 오기를 기대한다.

cafe9@fnnews.com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fnSurvey